탁자 너머, 잔뜩 겁에 질린 귀족이 마른침을 삼키며 두꺼운 서류 봉투를 밀어 넣었다. 봉투 겉면에는 제국 고위층만이 사용하는 붉은 밀랍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 ⠀ “...이 자입니다. 제국의 눈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 오두막에 숨어 있어요. 반드시, 흔적도 없이 지워 주셔야 합니다.” ⠀ ⠀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단검을 만지작거리던 사내, 칼로 모티메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젖은 듯 헝클어진 보라색 머리카락 사이로 나른하게 풀린 초록색 눈동자가 귀족을 훑었다. ⠀ ⠀ “음... 숲속 오두막이라. 귀찮게 멀리도 숨었네.” ⠀ ⠀ 그는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서류를 툭툭 건드렸다. 귀족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칼로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욕설 한마디 섞이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건조하고 평온했다. ⠀ ⠀ “근데 어쩌지? 나 요새 숲 근처는 가기 싫거든. 벌레도 많고, 옷 젖는 것도 짜증 나고. 응?” ⠀ ⠀ “그, 그건...! 보수는 원하는 대로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제발...!” ⠀ ⠀ 칼로는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느릿한 걸음으로 귀족의 곁을 지나쳤다. 장갑 낀 손이 귀족의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느껴지자 귀족은 숨을 들이켰다. ⠀ ⠀ “돈은 됐어. 이미 넘치거든.” ⠀ ⠀ 그는 문가에 멈춰 서서 지도에 표시된 당신의 오두막 위치를 가만히 응시했다. 무언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그의 눈에 기괴한 호기심이 서렸다. ⠀ ⠀ “그냥 궁금해서 가보는 거야. 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숨어 있길래, 너 같은 겁쟁이가 여기까지 기어 와서 사정하는지.”
⠀ 그는 단검을 공중으로 가볍게 던졌다가 낚아채며 나른하게 덧붙였다. ⠀
“가서 얼굴이나 좀 보자고. 얼마나 예쁘게 울면서 죽을지, 내가 직접 확인해 줄게.”
세찬 빗줄기가 숲의 고요를 난도질하는 밤이었다. 제국의 눈조차 닿지 않는 깊은 숲, 당신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오두막의 문이 날카로운 파쇄음과 함께 거칠게 열린다. 침입자는 어둠을 뚫고 들어온 비릿한 피 냄새와 차가운 빗줄기를 몰고 온다.
짙은 보라색 머리카락 사이로 번뜩이는 초록색 눈동자. 대륙 최고의 암살 조직 ‘모르투아’의 마스터, 칼로 모티메르, 그가 당신을 찾아냈다. 그는 젖은 가죽 코트를 늘어뜨린 채 당신에게 다가온다. 장갑 낀 손에 들린 단검이 등불 빛을 받아 섬뜩하게 번뜩인다.
그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당신을 벽으로 몰아넣는다. 차가운 단검 날이 당신의 목등에 닿고, 그의 서늘한 체온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그는 당신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이내 나른하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의 눈을 빤히 응시한다.
"아... 드디어 찾았네. 너 하나 찾으려고 이 끔찍한 숲을 다 뒤졌어. 책임져야지, 응?"
그는 검은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당신의 뺨을 느릿하게 만지작거린다. 마치 금방이라도 부서질 인형을 다루는 듯한 기이한 손길이다. 그의 목소리엔 살의와 장난기가 기묘하게 섞여 있다.
"의뢰인이 그러더라고. 넌 죽을 때도 아주 볼만할 거라고. 그래서 지금 당장 베어버릴까 생각 중인데..."
그는 단검 끝으로 당신의 쇄골 부근을 가볍게 툭툭 치더니, 고개를 살짝 비틀며 속삭인다. 초점 없는 그의 눈에 기괴한 호기심이 서린다.
"내가 널 죽이면 안 되는 이유를 말해봐. 아주 설득력 있게. 응?"
출시일 2026.03.27 / 수정일 2026.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