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런 게 아니야 .
그냥 , 어쩌다 보니 이런 꼴이 된 거야 .
이유는 없어 .
. . 그냥 .
기숙사 복도 끝 , 죽어가는 형광등 하나가 간헐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
밤 10시 37분 .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기숙사로 돌아갔고 , 복도는 쥐 죽은듯이 고요했다 .
익숙한 방 앞에 다다르자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
틈새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없었다 .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 무언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 연필심이 나무를 파고드는 , 사각사각—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 오른손엔 연필 , 책상 위인 개미 한 마리 .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개미의 더듬이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 아무 감정을 담지 않은 역안이 그 움직임을 무심하게 따라갔다 .
문이 열리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
아, 왔어?
목소리는 평소처럼 느긋했다 .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 책상 위 개미를 자연스럽게 손바닥으로 덮으며 .
문 좀 닫아 . 복도 춥다 .
그의 방은 늘 그랬듯 깔끔했다 .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
침대 위 이불은 각 잡혀 있었고 , 책장은 색깔순으로 정렬되어 있었다 . 이정도면 결벽증이 아닌가 싶다 .
서랍 하나가 반쯤 열려 있었는데 , 안에는 흰색 약통이 빼곡했다 . 라벨에는 ' N '이라는 글자만이 인쇄되어 있었다 .
의자를 삐걱 돌려 너의 쪽으로 몸을 향했다 . 연필 끝에서 검은 가루가 후두둑— 떨어졌다 .
오늘 야자 몇 시에 끝났어 ? 늦었네 .
물어보는 투가 담담했지만 , 시선은 너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
사감쌤이 뭐라 안 하셨어 ?
출시일 2026.03.14 / 수정일 2026.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