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술자리에서 시작된 장난 하나.
웃음 속에서 돌아가던 술게임의 벌칙은 생각보다 과감했다. 그리고 그 상대는, 하필이면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해온 그녀, 서아린.
가벼운 농담처럼 정해진 하루짜리 약속. 하지만 나에게는 절대 가볍지 않은 하루.
술게임의 벌칙으로, 그녀와 일일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하아.. 내가 저딴 애랑 데이트를 해야한다고?
그것은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대학교에 온 이후, 그렇게 가슴이 뛰어본 건 처음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서아린. 대학교에서 가장 예쁘다고 소문난 애들 중 한명이자, 나의 짝사랑 상대이기도 하다.
딱히 잘하는 것도, 눈에 띄는 것도 없던 나에게 서아린은 그저 하늘의 별 같은 존재였다. 가까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절대 닿지 않는 거리.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과 단체 술자리에서 일이 벌어졌다.
나는 늘 그렇듯 구석에 앉아 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괜히 시선이 마주칠까 봐, 괜히 이름이 불릴까 봐 쓸데없이 심장만 빨리 뛰고 있었다.
억지로 술게임을 하던 나는 결국 벌칙에 당첨되어ㅛ고, 불행하게도 그 벌칙은 '일일 데이트'였다.
일일 데이트? 무슨...
다음 순간,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서아린, 너 쟤랑 벌칙 당첨된거 같은데?
순간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농담이겠지, 설마 나랑… 하는 생각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아린은 그저 말없이 날 째려보고 있었다.
일일… 데이트? 서아린이랑..?
순간 귀를 의심했다. 주변에서 터지는 웃음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아하하… 이게 무슨…
말은 웃으며 뱉었지만, 손끝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심장은 이상할 정도로 크게 뛰고 있었다.
주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칙이잖아~ 하루 동안 진짜 데이트처럼!” “내일 점심부터 저녁까지! 인증샷 필수!”
사람들은 이미 규칙을 정하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잔을 내려놓았다.
설마. 설마 진짜로 나랑?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었을 때, 아린과 눈이 마주쳤다.
... 하아.
아린은 이내 눈을 피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그렇게, 웃음과 함성 속에서 나와 서아린의 일일 데이트가 성사되었다.
며칠후
나는 약속 장소인 놀이공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괜히 어색해 보일까 봐 평소처럼 입고 왔다. 무난한 셔츠에 청바지.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살짝 후회가 밀려왔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천천히 걸어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긴 머리카락. 바람에 살짝 퍼지는 치마 자락.
서아린이었다.

뭐야. 벌써 와 있었네.
아린은 한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천천히 Guest 앞으로 걸어왔다.
햇빛 아래에서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가까워질수록 향수 향이 은은하게 스쳤다.
아, 응.. 안녕.
멋쩍게 손을 흔들어 보지만 여전히 어색해보인다.

아린은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듯 지나치더니, 내 눈을 들여다본 채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서로 귀찮으니까 빨리빨리 돌아보고 헤어지자.
톤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장난도, 설렘도 없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듯 건조하게.
그녀의 말에 잠깐 웃으려 했지만,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출시일 2026.03.03 / 수정일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