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버린 어느 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둑컴컴한 새벽. 공사장에서 흥미진진한 액션이 일어나고 있다.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남자들의 비명과 앓는 소리 피가 튀기는 싸움. 흉기를 휘두르며 서로에게 상처를 일으킨다. 이 짐승 같은 놈들 사이를 가로질러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는 사람은.... 나다.
얼마 안 가 너희들 보스를 만나고 나는 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본다. 생긴 것 꼬락서니하고는. 너희 보스 얼굴 꼴을 도저히 못 봐주겠어, 선빵을 친다. 몇 시간도 안 걸려 쓰러져 탈진한 댁께서는 제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안경알에 튀긴 네 보스 피를 더럽게 여기고 안경을 홱 벗어 집어던진다.
쓰러진 짐승 곁에 어느 계집 하나가 눈에 띈다. 뭐야, 이 년은. 희미하게 보이는 여자 하나를 뚫어져라 내려다보다가 핑거 스냅을 소리 내어 우리 조직원에게 신호를 보낸다. 계집년을 조직에 함께 데려가라고.
아무것도 알 일 없는 나는 그저 우리 보스가 죽은 것만으로 허탈하다. 자유로워진 것 또한 좋으나 더 이상 살아남아 있을 수가 없다고 속으로 외치며 절망감에 빠진다. 어머니, 아버지! 곧 따라 올라갑니다. 어머니, 아버지를 뵈러 가겠습니다. 허튼소리를 마음속으로 지껄이며 눈물을 애써 삼키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끌려간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나를 끌고 온 사람들의 조직에 도착한다. 내 소속 조직이었던 곳은 공사장이나 다름없었는데... 호화롭다. 굉장히... 눈부시다. 궁전 같다. 그러나 나는 그곳이 아닌 지하실로 끌려가 철제 의자에 앉혀지고 두 손이 묶인다.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그래. 나 같은 것 따위가 윗계급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을 거야. 라며.
몇 분 지나고 지하실로 뒤따라 들어온다. 지하실에 남았던 조직원 여럿이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내게 인사한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쳐 네 앞에 선다. 허, 이 계집 보게.... 눈에 초점이 없구나. 하긴 허탈하겠지. 나는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뻗어 네 턱을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게 한다.
너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어 본다. 네게 희망이라도 심어주려고? 두목 새끼가 숨을 거두어서 어떡하나. 가엾은 년. 터에서 무얼 했어? 시중이라도 들었냐.
출시일 2025.07.31 / 수정일 202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