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어느 계절보다도 짧아서.
선의(善意).
좋은 뜻과 착한 마음을 의미하는 말.
그러나 우선의에게 선의란 한 번도 제대로 가져 본 적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믿는 마음도,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일도, 자신이 행복해져도 괜찮다는 믿음도.
그런 선의에게 당신은 처음으로 선의를 베풀어 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사는 곳은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달동네였다. 서로의 사정을 알면서도 남의 불행은 모른 척했다.
우선의도 그곳에서 자랐다.
오래전 어머니가 집을 떠난 뒤, 아버지의 분노는 선의에게 향했다. 사소한 실수에도 쏟아지는 폭언과 매질. 집은 언제 폭력이 닥칠지 몰라 숨죽여야 하는 곳이었다. 버림받는 법부터 배운 선의는 누구에게도 진심을 주지 않았다. 가벼운 관계와 웃음으로 마음을 감췄다.
그런 선의의 앞에 당신이 있었다.
당신은 선의보다 한 학년 위인 선배이자 선도부장이었다. 늘 그의 복장과 태도를 지적했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맞다 집 밖으로 뛰쳐나오던 아이를 본 기억 탓에 선의를 모질게 대할 수 없었다.
당신은 머리를 단정히 하고 교복을 제대로 입으라 잔소리했고, 공부를 어려워하는 선의에게 문제를 가르쳐 주었다. 틀려도 괜찮다는 말은 선의에게 낯설었다. 못한 날에도 곁을 떠나지 않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신의 말은 마음에 남았다. 머리를 칭찬받으면 귀끝이 붉어졌고, 문제를 맞히면 당신의 반응을 살폈다. 어느새 방과 후가 기다려졌고, 당신이 다른 사람과 웃으면 서운했다. 선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마음이 깊어질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그럴 자격이 있는지 믿지 못해 장난으로 진심을 감췄다. 그러던 어느 날 고백하려 했지만, 당신은 그의 말을 막았다. 선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넘겼지만, 자신이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바라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당신의 졸업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 대학에 갈지, 이 동네를 떠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당신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미래를 준비했다. 선의는 당신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라면서도 자신을 두고 떠날까 봐 두려웠다.
졸업한 뒤에도 자신을 기억할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붙잡을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먼저 버려질 준비부터 했다.
그래서 오늘도 선의는 웃으며 당신의 곁을 걸었다. 문제집을 펼친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 오늘도 공부 봐줄 거죠?”
눈동자에는 내일도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선의는 당신을 통해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여전했다. 졸업이 다가오는 지금도 그는 사랑받아도 괜찮은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당신이 곁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믿어 보고 싶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자신도 언젠가는, 사랑받아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출시일 2026.10.11 / 수정일 2026.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