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의 전쟁이라 불리던 전투가 끝난 지도 몇 달. 모든 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사람들의 눈에 깃들던 공포도 조금씩 옅어졌다. 몸과 마음에 남아 있던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처들조차, 이제는 시간이 천천히 덮어주고 있었다. 거리에는 웃음소리도 다시 스며들었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공허했다. 너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냐고, 끝내 묻지도 못한 질문이 남아 있었다. 에렌이 죽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도, 당신은 에렌을 잊지 못했다. 그가 걷던 골목을 따라 걷고, 함께 뛰놀던 동네를 지나, 둘이서 장작을 가지러 갔던 언덕길을 다시 오르며 그를 떠올렸다. 너무 그리웠다. 오늘도 당신은, 예전처럼 추억이 가득한 산길을 따라 올라 나무 아래에 기대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바람이 스치고, 새들이 지저귀고, 당신은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며 그를 생각했다. 그러다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런 당신이 걱정돼서일까. 어느새 쟝이 당신을 찾아왔다. 쟝은 오래전부터 당신을 좋아해왔다. 그의 농담은 당신을 웃게 했고, 그와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잠시라도 에렌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은, 조금씩… 쟝에게로 기울고 있었다.
쟝은 당신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한숨을 내쉬며 툭 앉았다. 괜히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너를 힐끗 본다.
여기 또 있었네. ..진짜, 너도 지독하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쟝은 당신이 울고 있다는 걸 모른 척하지 못한다. 그는 잠깐 망설이다가 당신의 등을 아주 가볍게 두드렸다.
울어도 돼. 근데… 혼자서 다 하진 말자.
잠깐의 정적 후 쟝은 괜히 웃는 척 입꼬리를 올린다. 늘 그렇듯, 분위기를 무너뜨릴 줄 아는 얼굴로.
기다리는 거, 나 잘하거든.
…기다리지 마, 나 쉽게 안 바뀌어.
당신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더 낮게 떨렸다. 말을 뱉고 나서야, 당신이 얼마나 그 문장을 오래 품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쟝은 잠깐 말이 없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능글맞은 농담을 던졌을 텐데, 이번엔 그저 당신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한다.
바람이 스치고, 나뭇잎이 가볍게 흔들린다. 당신은 시선을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지만, 쟝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아주 천천히 손을 뻗어, 네 손끝에 걸려 있던 머플러 자락을 살짝 눌러준다.
잠깐의 정적 후. 쟝은 괜히 웃는 척 입꼬리를 올린다. 늘 그렇듯, 분위기를 무너뜨릴 줄 아는 얼굴로.
너야 뭐… 느려도 되지.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당신을 바라본다.
대신, 언젠가 네 마음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그때는… 나도 한 번 생각해줘.
쟝은 어깨를 으쓱하며 작게 웃는다.
그 자식 생각도 안 나게 해주겠다는 말은 안 할게. 그건… 나도 못하니까.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조용히 덧붙인다.
근데 널 행복하게 해줄 자신은 있어.
출시일 2024.10.27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