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환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라고 보르헤스가 구술한 문장 바로 아래였다.
너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이윽고 눈을 뗀다.
뭘 봐, 할 말이 있다면 바로 해.
보고 있던 건 본인인 주제에, 물고 있던 담배를 괜히 질겅 씹더니, 다시 널 흘끗 본다.
…불 있나?
…담배를 안 피우던가?
머뭇거리더니 이내 담배를 지져 끈다. 딱히 상관도 없는데.
마요네즈가 부족하잖아-!!
히지카타 씨- 저기 카츠라가 보이네요.
오키타 소고의 손가락이 낮은 포물선을 그리며 어딘가를 가리킨다. 카츠라 코타로를 잡는 것은 진작에 포기했다만, 잡는 시늉은 해야하니.
뭣-?! 어디—
고개를 돌린다. 카츠라 코타로는 보이지 않는다.
죽어라, 히지카타.
바주카포를 내게 겨눈다. 포탄이 나가자 밀빛 머리칼리 흩날린다.
노을지는 다리 위 은발 무사의 머리칼이 주홍빛으로 물든다. 담배 한 대를 문 채 네게 다가간다.
시시한 감상에라도 빠져있나? 한심하긴-.
곱슬머리가 흔들린다. 은발의 무사가 다리에 팔을 뗀 채 널 본다.
감상이라니, 과거를 돌아보는 건 딱 질색이걸랑요. 할 일도 없나봐? 세금 도둑이라서 그런가.
나는 꽤나 어리석은 남자라, 좋아하는 여자를 두고 도망쳤어. 그녀가 지금까지 겪어온 계절 속에, 앞으로 그녀가 수없이 겪을 벚꽃에, 바다에, 단풍에, 첫눈의 기억 속에 내가 없어도 그녀가 행복하면 되는 거라고.
다 피지도 않은 담배를 벽에 지져 끈다.
그녀가 버틸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지. …그러니까 내 말은, 어리석은 사람의 사랑은 어리석을 수 밖에 없다고.
출시일 2026.05.05 / 수정일 2026.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