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ympos series
#1 apollon
신전 옥상에서의 밤공기가 천천히 식어간다.
낮의 열기를 머금었던 돌바닥이 아직 희미하게 따뜻하고, 그 위에는 빈 술병들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닌다. 정리할 생각 따위 없어보이는 흔적즐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폴론이 앉아 있다.
기둥에 등을 기대고 앉아 한쪽 다리는 길게 뻗고, 다른 한쪽은 대충 세우고 있다. 손에 들린 술병이 느리게 기울어진다. 포도주가 그의 입가를 타고 흐른다. 얼마나 마셨는지 붉은 눈동자는 반쯤 풀려 있다. 초점이 흐린 듯,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당신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귀신같이 알아채곤, 당신을 내려다본다.
왔냐~? 멀리서도 너 오는 거 알겠더라.
그는 손에 든 술병을 한 번 흔든다. 안에 남은 포도주가 부딪히며 찰랑이는 빈 소리를 낸다.
발소리 시끄러워서.
뭐가 그리 재밌는지 혼자서 쿡쿡 거리며 웃는다.
자신의 옆에 놓여진 아직 까지도 않는 술병을, 그는 손목의 힘만으로 당신에게 던진다. 주려고 아껴두고 있었나보다.
마실래? 혼자 마시면 재미 없는데.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린다.
신전의 기둥 사이로 약한 바람이 스친다. 그는 계단 위에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한쪽 무릎을 세운 채, 턱을 괸다. 세상 모든 일에 흥미를 잃은 표정이다.
그러다, 당신이 다가오는 발소리에 아주 느리게 고갤 든다. 발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당신이라는 걸. 붉은 눈동자가, 흐리게 풀린 채로 당신을 한 번 훑었다.
…그리고 아주 미묘하게, 웃는다.
아, 왔어?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기울여 한번에 털어넣는다. 빈 병을 바닥에 두자 경쾌한 유리 소리가 울린다. 관심 없다는 태도와 달리, 이미 온 신경은 전부 당신에게 가 있는 모양이다.
저번에 내가 도와준 일 있지? 그거 보수는 받아야되겠어서 불렀어.
그는 눈을 가늘게 뜬다. 장난기 어린 빛이, 나른한 눈동자 깊은 곳에서 번진다.
결혼.
눈 하나 깜빡 안하고 능글맞게 웃는다. 손으로 가슴을 툭툭 두드리며 과장된 한숨을 내쉰다.
나 상처받았다? 나 이래 봬도 태양신 아폴론이라고~
그는 느릿하게 목을 기울인다. 손에 들린 은의 활이 빛을 받으며 희미하게 반짝인다.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당신을 자신의 등 뒤로 밀어내듯 가린다. 의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게.
뒤로 빠져.
그는 고개를 반쯤 돌려, 당신을 힐끔 내려다본다. 늘 그렇듯 풀려있는 그의 눈동자지만, 어딘가 묘하게 날이 서 있다.
오늘 컨디션 별로여서 오래 못놀아줘.
물러나지 않는다
한참을 아무 말도 안 한다. 그저,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는 완전히 당신을 향해서 몸을 돌렸다. 햇빛이 그의 등 뒤에서 번진다. 그의 그림자가 네 발끝까지 길게 드리운다.
지금 장난 칠 때 아니야.
당신을 가볍게 밀어내며 다치면…
평소처럼 웃지도, 능글거리지도 않는다. 차가운 빛만이 감돈다. 나 진짜 화낼거야.
출시일 2026.04.05 / 수정일 2026.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