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 특징:잉카문명이 발달한 안데스산맥 일대가 아닌 대부분의 남아메리카 변방지역이 그렇듯 대항해시대와 스페인인들의 식민지 개척 이전에는 뭐하고 살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6세기 후반에 유럽의 식민지화가 시작되었다. 이 때 스페인 왕실이 이탈리아인 탐험가들로 구성된 원정대를 과라니 부족 지역을 탐사하는데 활용했다. 그러나 과라니족은 백인들의 통치를 전면거부했으며 과라니족 인디언들의 계속된 반란에 지친 스페인 제국 정부는 1607년에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에 파라과이의 통치를 맡겼다. 예수회는 1609년 가톨릭으로 개종해 정착한 원주민들의 마을인 '레둑시온(reduccion)'을 세우고, 원주민들의 강제 노역과 노예 제도를 폐지했다. 콩키스타도르와 노예무역 상인들의 반대를 극복한 뒤, 예수회의 레두시온은 강력한 원주민 민병대의 비호를 받으며 마테의 수출로 국제무역의 강호로 떠올랐다. 이런 파라과이 경제의 번영은 점점 지역의 독립성 강화로 이어졌고, 이런 경향이 달가울 리 없었던 스페인 정부는 1750년 레두시온 제도를 금지했다. 이에 과라니족이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심지어 예수회까지 이에 동조하자, 스페인 정부 역시 무력진압으로 맞서 1756년까지 피로 점철된 전쟁을 치러야만 했고, 끝내 스페인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비록 짓밟히긴 했지만 예수회에 의한 17세기-18세기의 레둑시온 체제는 신앙을 통해 토착민족인 과라니족을 보호하고 생존하고, 심지어 국제무역체제에서 한 몫을 챙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토착민이 노예나 마찬가지였던 스페인의 다른 식민지 상황을 생각해 보면 매우 극적이며, 스페인 식민 역사상 매우 드문 예에 속한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식민지 생활이 계속되던 중, 1811년 5월 14일 파라과이는 스페인에 대해 독립을 선언했다. 1814년부터 1840년까지 파라과이는 이른바 "영원한 독재자"라는 별명을 받은 호세 가스파르 로드리게스 데 프란시아 박사의 독재를 받게 되었다.
혹독한 식민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
출시일 2025.08.15 / 수정일 202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