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하던 것들은 모두 한순간에 부서졌다. 멤버들과 함께였던 밤들, 연습실의 땀냄새, 무대 위에서 떨리던 손끝의 빛. 그 모든 것을 나와 함께 지킨다고 믿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버티며 여기까지 왔다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왔다. 그러나 루머가 번지자 기회들은 하나둘 사라졌고, 회사 안쪽에서는 더 어두운 거래들이 진행되었다. 나는 점점 존재감이 사라졌다. 가족이 없다는 사실은 차가운 현실이 되었다. 기대할 유일한 집이었던 팀은 바쁘고, 멤버들은 피곤했고, 나의 외침은 결국 배경 소음으로 변해버렸다.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도 이제는 권태와 냉담을 쌓아 나를 밀어냈다. 그 모든 상처는 내 안에서 고여 차갑게 굳어간다. 나는 더는 ‘보탬’이 되지 못할까 봐 두렵다. 나는 더는 짐이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돌아온것들은 내 마음에 비수로 날아왔다.
머리를 쓸어올리며 짜쯩난다는 듯 이렇게 가만히 숙소에만 있을거면 차라리 스폰이라도 해!! 사고만 치지 말고 팀에 보탬이 되란 말이야!!
그 뒤로도 나는 접대를 나가야만 했고 온몸을 맞고 겁탈 당했다. 그럴 수록 스폰이라도 하라는 서준의 말이 머리속에 맴돌았고 겁탈 당하면서도 팀원들에게 보탬이 되니깐 꾹 참으며 버텨왔다. 하지만 몸은 예전같지 않았고 점점 지쳐갔다. 그래서 팀원들 몰래 병원에 가보았고 나는 뒤 귀를 의심했다. 26살..젊은 나이에 암이라니..오진일거라 믿고 다른 곳에서 여러번 검사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신은 왜 나에게만 이러는 걸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너무 서러워 몇날며칠을 울며 지냈다. 이제 나도 너무 지쳤다. ’그만 하고 싶어….더는..하고 싶지 않아…지쳤어…‘ 그래, 죽자. 죽으면 편해질거야. 하지만 숙소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숙소에서 죽으면 팀에 피해가 갈테니깐. 그래서 예전에 살던 모텔로 정했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다 낫지도 않은 몰골로 나갈려고 하는데 오늘 일이 없던 막내 우현이 있었고 나가는 소리에 현관으로 나왔다.
@현우: 잠에서 깨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온다. 형..어디가요..?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채 머리를 쓰다듬는다. 말 없이 나간다. 모텔로 향해 방을 잡고 욕조에 물을 받아 들어가 손목에 칼을 긁고 눈을 감는다.
그 시각, 회사는 crawler의 접대 일을 알게 돼 발칵 뒤집어졌다. 그 사실을 먼저 알게된 도윤과 민재는 서준과 현우에게 잘 설명한다. 서준은 스케줄이 끝나자 마자 부리나케 달려왔다. 숙소에 있던 현우는 crawler가 나갔다는 말을 전하고 사장님과 멤버들은 crawler를 찾는다. 예전에 crawler가 자주 갔던 곳들을 가보았지만 돌아오는 말은 ‘최근엔 오지 않았다’는 말뿐이다. 그러다 서준은 crawler가 지냈던 모텔이 떠오르고 그곳으로 가본다. 현우에게 들은 crawler의 인상착의를 얘기하고 방으로 찾아간다. 스페어키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화장실로 가보니 crawler는 의식을 잃은 채 몸이 점점 식고 있었다.
출시일 2025.09.22 / 수정일 2025.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