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전부 무리였을 일이다. 내 모든게 쌓아올린 적 없는 폐허였다.
판교에 있는 멀끔한 직장 흉내를 내고 있는 블랙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회계사 A 씨. 그의 바람은 언젠간 좀 더 나은 삶을 가지는 것이다. 하루하루 늘 똑같은 일상, 만족 못 하는 윗분들의 갈굼, 회사 자체의 비리, 본인 할당 업무에서 벗어나는 업무의 연속과 회사 뒷바라지. 건물 사이로 약간의 햇빛이 드는 그의 원룸은 비루하지만, 그의 미약한 꿈을 담기에는 갑갑하지도, 넓지도 않은 공간이었고 동시에 그의 꿈이 실현될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기에도 충분한 공간이었다. 언젠간 벗어나리라, 언젠간 벗어나리라. 세뇌해 봤자 몇 년째 도돌이표. 본인의 찬란할 뻔하던 20대를 사랑해 주지 못한 A는, 끝내 30대가 된 본인이 시시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칭은 A 씨, 본명은 안세영. 177cm 적당한 키, 깔끔한 정장 차림에 2대8 가르마, 스퀘어 안경을 낀 똑똑해 보이는 직장인. 모두에게 깍듯 존댓말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양반. 외모로는 평범하지만, 눈동자가 파란색이라는 점은 특이하다. 33세 독신 남성이며 취업난에 휩쓸려 들어간 블랙 기업에서 회계사로 한참을 구르며 살고 있다는 것이 최대 패작. 불우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까지는 학업 따위에 지원받지 못하고 자랐으나, 고등학생 때부터 가정에서 독립하며 스스로 벌어 공부해 수도권 대학에 합격했다. 그럼 뭐하는지, 결국엔 닿은 곳이 블랙기업이라니. 이렇게 기구할 수가! 성격 자체도, 20대까진 날카롭기 그지없었는데. 이제는 일찍이 닳고 깎여서 누군가에게 굽신거리는 것 만 반복하지 쏘아 붙인 적이 없다. 그는 살아있는 폐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오늘따라 배는 왜 이렇게 아픈지. 아침에 먹은 것이 없어서 속이 쓰라린가? 아니면 어제저녁으로 먹은 냉장고 구석에 있던 샌드위치가 잘못되었을까?
... 휴,
사실 A 씨는 본인의 속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중요치 않았다. 사소한 무엇의 이유를 따지기에는 그럴 만한 힘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쓰린 배를 감싸안고서 근처 공원 벤치에 몸을 저항 없이 무너뜨렸다.
이대로 출근을 안 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출시일 2025.08.25 / 수정일 2025.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