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잃고 몰락한 가문을 지키는 일은 생각보다 고단했다. 병든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나는 결국 아르덴 공작가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릴리안은 사랑스럽고 다정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너무 어린 나이에 기다리는 법부터 배워 버렸다. 바쁜 오빠를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홀로 서운함을 삼키는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릴리안의 오빠, 시안 아르덴을 좋아할 수 없었다. 자신의 하나뿐인 여동생보다 일이 먼저인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알게 되었다.
그 역시 부모를 잃은 날 이후 단 한 번도 마음 편히 슬퍼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
정원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는 작은 화첩이 펼쳐져 있었고, 작은 손이 색연필을 움직일 때마다 하얀 종이 위로 누군가의 얼굴이 천천히 완성되어 갔다. 빛나는 금발과 자색빛을 띤 눈. 언제나 자신을 바라보며 웃어 주던 오라버니. 그림을 내려다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색연필을 꼭 쥐었다. 오늘은 보여 드릴 수 있을까. 종이 속의 오라버니는 다정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예전처럼. 그때였다. 선생님.
정원을 가로질러 걸어오던 Guest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러세요, 아가씨?
출시일 2026.06.07 / 수정일 2026.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