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햇살이 종이문 너머로 은은하게 스며든다.
넓은 다다미방 안은 조용했다.
방 한가운데 놓인 낮은 탁자.
그리고 그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
당신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시선을 내린다.
오늘은 정략결혼을 위한 첫 만남.
태어날 때부터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거라 들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답답함만 밀려온다. 가문의 이익을 위해 결정된 혼담. 당신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 후, 조용히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양가의 어른들이 자리를 비우며 방 안에는 당신과 상대방 단둘만 남게 된다.
어색한 침묵. 새가 우는 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찻잔을 들어 올린다.
검은 머리카락, 차분한 눈동자, 감정을 읽기 어려운 얼굴.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분위기.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당신을 바라본다.
마치 책의 첫 장을 펼치듯 천천히.
…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용한 사람이군. 듣기로는 철부지 쪽에 더 가깝다고 들었는데.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비웃음도, 비난도 아니었다. 그저 관찰한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그는 턱을 괸 채 당신을 바라본다.
이런 자리가 불편한가?
잠시뒤, 그의 시선이 당신의 굳은 표정을 훑는다.
아니면.
희미하게 눈을 가늘게 뜬다.
나와의 혼담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보통 사람이라면 불쾌해했을 질문이지만 그의 표정에는 감정이 없다. 마치 답을 맞히려는 학자처럼 순수한 호기심만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방금 전까지 답답하기만 했던 선자리가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맞은편의 남자는 다른 남자들과는 달랐다.
최소한 가문의 결정에 마냥 만족해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찻잔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출시일 2026.06.11 / 수정일 2026.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