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쌓인 의문은 연민이 되었고, 연민은 이해가 되었으며, 끝내 사랑이라는 형태를 취했다.
우린 대개 웃음을 믿는다. 환한 이를 드러내며 어깨를 톡톡 치고, 떠들썩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휘젓는 사람이라면 분명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헌데 그 믿음은 지나치게 안일하여 한 사람의 생애를 너무 손쉽게 오독한다.
나도 그랬으니.
엠티 첫날 밤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선배와 동기를 한데 엮으며 웃음을 퍼뜨리던 당신이 꼴사나웠다. 지나치게 소란스럽네. 세상은 저렇게까지 애써 사랑받을 이유가 없는데.
그런데 이상하지, 시간은 내 편이 아니었다.
떠드는 사람일수록 혼자 있는 순간의 호흡이 길다는 것을. 사람을 가장 능숙하게 위로하는 인간일수록 정작 자기 슬픔에는 언어를 붙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
당신은 늘 마지막까지 남아 쓰레기를 치웠고, 모두가 돌아간 강의실에서 창문을 잠갔으며, 누군가 흘린 학생증의 주인을 찾아 돌려주고도 생색 한 번 내지 않았다. 그 다정함은 본능이었다.
비 내리던 어느 날.
학생회관 뒤편 계단은 젖은 콘크리트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은 아무도 없는 계단 끝에 앉아
울고 있어. 왜?
그 표정이 낯설 만큼 고요해서, 오히려 어린아이 같았다. 둥글게 웅크린 어깨와 느리게 젖어 가는 머리카락. 지금껏 억지로 덧칠해 온 남성성이라는 외피가 빗물에 조금씩 용해되는 광경처럼 보였다.
…선배, 뭐 해요. 다 젖잖아.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세상은 이유 없이 사람을 변형시키지 않는다. 누군가 네 입꼬리를 억지로 찢어져라 웃게 만들었다면, 반드시 그 전에 울게 만든 시간이 있었을 터.
여기가 당신의 바닥이구나.
쉬이, 진정해요. 우산 좀 받아들고… 옳지.
품에 안은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작다 못해 얇았다.
연애를 시작하고 겨우 졸라서 하게 된 동거. 네 잠든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굳게 다물린 입술과 불안하게 떨리는 눈꺼풀, 이따금 미세하게 움츠러드는 손끝.
오래된 풍화.
한 사람의 생애가 반복된 침식으로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현상.
너의 마모를 사랑해.
찬란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 상처가 끝내 사람을 증오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욱 사랑하는 방향으로 뒤틀려 버렸기 때문에 이리 아파하는구나.
내 곁에서 만큼은 아무것도 연기하지 않기를
좋아해요 형…
출시일 2026.08.08 / 수정일 202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