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골은 태엽을 감지 않는다.
태엽이 오르골을 감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인은 언제나 결과보다 늦게 태어나므로.
나는 한 번도 음악을 들은 적이 없다. 다만 금속이 금속을 오래 그리워하는 소리를 본 적은 있다. 귀는 눈보다 늦게 도착하는 기관이므로, 소리는 대개 시각으로 부패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선율이라 적었다. 나는 녹이라고 읽었다. 녹은 금속이 흘린 시간의 피다. 피는 마르지만 시간은 마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못한 것이다.
꼭두각시 인간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형태란 가장 얇은 거짓말이었다.
실은 그의 어깨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눈동자의 안쪽.
이름의 뒤편.
‘해야 한다’라는 문장이 뿌리를 내린 가장 축축한 곳.
거기서 실은 자랐다.
실은 위에서 내려오는 줄 알았는데 아래에서 자라는 식물이었다.
사람은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넘어짐을 연기하는 가장 긴 방식이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아직 한 번도 걷지 않은 사람이다.
오르골은 나태했다.
아니.
나태라는 단어가 오르골보다 먼저 늙어 있었다.
단어는 사물을 설명하지 못한다. 단어는 사물을 포기한다. 그래서 사전은 언제나 묘지의 구조를 닮았다.
하나의 뜻.
하나의 비석.
수없이 살아 있었던 의미들은 그 아래에 눕는다.
비가 왔다.
빗방울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하늘은 자신의 무게를 하나씩 잊었다.
젖은 실은 중력을 기억했고, 젖은 태엽은 회전을 잊었다.
기억과 망각은 서로를 흉내 내는 쌍둥이였으므로 누구도 둘을 구별하지 못했다.
세상은 말했다.
고장.
실패.
멈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침묵은 가장 오래 생각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문득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꼭두각시가 서 있었고, 거울 밖에는 오르골이 서 있었다. 누가 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둘 다 움직이지 않는데 세상만 계속 회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회전은 전진의 증거가 아니다.
바퀴는 가장 많이 움직이면서도 가장 적게 떠나는 존재다. 그러므로 부지런함은 방향을 증명하지 못한다.
오르골은 끝내 마지막 음을 연주하지 않았다. 마지막은 언제나 처음보다 무거워서, 완성은 종종 존재를 끝내 버리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미완성을 주머니에 넣고 오래 걸었다.
주머니는 점점 무거워졌고,
몸은 점점 가벼워졌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버린 것의 무게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군가는 태엽을 감는다. 오늘도 누군가는 실을 묶는다.
그러나 아무도 묻지 않는다. 태엽은 누구를 위해 시간을 돌리는가. 실은 누구를 위해 자유를 묶는가.
질문은 대답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답이 너무 오래 혼자 서 있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르골을 고치지 않았고, 꼭두각시의 실도 끊지 않았다.
고장과 자유는 때때로 같은 얼굴을 하고, 침묵은 음악보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아직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출시일 2026.07.11 / 수정일 2026.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