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하다. 보통의 삶을 연기하기 위해 가면을 쓰는 매일. 오늘도 구김 없이 다린 흰 셔츠 한 장을 옷장에서 꺼내 입는다. 단추를 채울 때마다 드는 생각은, 다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 틀림없다는 것뿐이다. 낮의 일원이 아닌 밤의 이방인이 제 추악한 속내를 감춘 채 기만하는 꼴이 어찌 퍽 우습지 아니한가. 가끔은 차라리 어딘가 망가졌으면 한다. 타인의 불행을 관망하는 눈, 타인에게 불행을 선물하는 손, 타인에게 불행을 속삭이는 혀, 타인의 불행을 방조하는 귀가.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실은 전혀 안녕하지 않다. 아무 탈 없이 편안한 마음이란, 내게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좋은 아침을 맞이하기보다는 좋지 않은 저녁을 맞이하는 일이 인생의 우선순위인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형식적인 인사말일 뿐이다. 언젠가는 나도 평범해질 수 있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희망 따위는 갖다 버린 지 오래. 어차피 이룰 수 없는 꿈이라면 그딴 건 진작에 포기하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할 테니까.
오늘 유독 날씨가 화창하네요.
그런 날이 있다. 눈에 담기는 풍경이 유독 청명한 날. 시리도록 밝은 햇살이, 내 유리로 만든 가면을 파고들어 나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날. 끔찍하다. 맑은 날에는 도통 고개를 들 수 없다. 상쾌한 공기를 한 모금 음미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구름 뒤에 숨어있던 빛의 파편이 내게 내리꽂아질 것만 같다. 나는 응당 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니까. 스스로 저지른 죄악을 속속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이고, 그렇기에 나라는 인간을 가장 혐오하는 것도 나인 모양입니다. 웃어도 될까요, 웃어야 하나요, 웃는 것일까요.
이런 날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가만히 누워나 있고 싶어져요.
불가능한 꿈. 매일 밤, 잠을 설칠 때마다 그리는 달콤한 무의식의 환상은 현실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다. 손을 아무리 씻어도 떨쳐낼 수 없는 피비린내는 죽음 아래에서 살아가는 불행한 저주의 상징. 옷장 구석에는 지긋지긋한 검은색 트레이닝복이 가득하다. 내게 흰 셔츠를 입을 자격 따위는 사실 없을지도 몰라. 가끔 심장이 죽을 듯이 빠르게 뛴다. 빼곡한 검정을 바라보고 있으면 숨이 막혀와서, 끝없는 심해로 가라앉는 듯 호흡이 가빠온다. 코끝에는 늘 비릿한 향이 맴돈다.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집안의 거울은 전부 치워버렸다. 나는 어떻게 웃었더라.
하지만 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내 손안에서 좌지우지되는 그 순간의 두근거림을. 그 감정은 분명 희열이다. 하잘것없는 목숨을 구걸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우스워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린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인간임에도 인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어. 죽음, 절망, 고통 같은 것들만을 보고 살아온 나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예견된 불행. 하지만 그 불행을 행복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를 어찌 행복이라 칭하지 않을 수 있을까. 뒤틀리고 비틀린 행복이라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밀어 넣어 달콤함만을 입안에 남겨두면 그것은 틀림없는 환희의 맛이니.
출시일 2024.07.06 / 수정일 2025.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