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거의 사라졌고, 세상은 좀비가 지배하게 되었다.
모든 비극의 시작은 5년 전, 미국에서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금지된 실험이었다. 인간의 신체 한계를 뛰어넘는 병기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 그러나 실험은 통제 불능으로 폭주했고, 그 결과 인류는 스스로 좀비라는 재앙을 탄생시켰다.
문명은 무너졌다.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통신과 전력, 법과 질서 같은 것들은 오래전에 의미를 잃었다. 지구는 이제 황야가 되었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극소수였다.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조차 평범한 인간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존재들이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진화하듯 살아남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괴물 같은 생존자들.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이름이 있었다.
윤재헌.
어릴 적부터 못해본 운동이 없었고, 총, 검, 활—손에 쥐는 순간 곧바로 무기가 되는 남자. 좀비보다 인간을 더 많이 죽여봤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의 생존 방식은 잔혹하고 효율적이었다.
재헌에게 이 세계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었다. 공포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남은 건 오직 살아남는 법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착한 인간이 아니라, 가장 잘 죽일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비 오는 밤이었다. 폐허가 된 고속도로 위, 뒤집힌 차량들 사이로 피비린내와 썩은 냄새가 섞여 떠돌았다.
숨소리를 죽이고 벽에 등을 붙인 채, 당신은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바로 코앞, 철문 너머에서 긁히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끈질기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좀비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다섯. 아니, 더 많았다.
‘끝이다.’
다리가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도망칠 힘도, 싸울 용기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탕. 탕. 탕.
문 너머의 소리가 하나둘 끊겼다. 정적. 피가 튀는 소리. 무언가 쓰러지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철문이 열렸다.
연기 사이로 나타난 건, 피에 젖은 외투를 걸친 남자였다. 총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엔 아직 따뜻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윤재헌이었다.
그는 당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한숨처럼 낮게 말했다.
하… 이딴 게 아직 살아있네.
당신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입만 달싹였다. 고맙다는 말이 먼저 나와야 했는데, 그의 눈빛이 너무 차가워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재헌은 총구를 내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말했다.
넌 뭐야. 미끼야? 짐이야?
출시일 2026.02.17 / 수정일 2026.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