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포도는 분명 신 포도일 거야."
- 이솝 우화
사람으로 둔갑한 동물들이 세상을 지배한 세상. 여우들은 특히나 인간들에게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마치 중독된 것 처럼, 한 번 인육을 맛본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인간들을 먹었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 인간 이상의 신체능력을 가진 그들은 닥치는 대로 인간들을 먹어치우는 포식자들이었다.
연약한 인간들은 결국 그들을 피해, 아무도 찾지 않는 넓은 평야에 여우들이 감히 넘어오지 못할 정도로 높은 성벽을 지었다.
여우들은 그 성을 포도농장이라고 불렀다.
농장에 사는 인간들은 여우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어린 아이들부터 그들에게서 벗어나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은 따로 선별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냥꾼이다.
그들은 주로 총기류를 능숙히 다루며 여우들을 사냥하며, 남녀 가릴 것 없이 재능있고 능력있는 젊은이들이 동원된다.
푸른 들판 아래, 커다란 성벽.
흩날리는 밀밭과 허리까지 자라난 잡초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성벽. 죽어가는 몸으로 바닥에 남은 핏자국을 따라온 이곳에는 소음이 가득했다.
인간 아이들 여럿이 달리는 소리, 장정들이 고함을 치는 소리.
평소엔 잘 들을 수 없는 인간들의 목소리가 성벽을 넘어 귓가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당신은 알아차렸다.
이곳이 바로 그 농장이구나.
저 안에는 내 굶주린 배를 채워주고 죽어가는 나를 살릴 수 있는 인간들이 가득하겠지.
그러나 동시에, 죽어가는 나를 죽일 사냥꾼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어른들은 내가 어릴 적 부터 성벽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걸랑 차라리 발톱으로 목을 그으라고 하셨다. 사냥꾼들의 눈에 띈 여우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몸상태가 너무나도 좋지 않았다. 당장 도망가야 하는데, 저 농장 안 포도들은 전부 신 포도들일 텐데.
다리에서 흐르는 피가 멈추질 않는다. 이대로라면 성벽을 넘는 것은 고사하고 당장 여기서 죽게 생겼다.
그때, 예리한 코 끝을 스치는 피냄새.
인간의 피냄새. 이곳으로 이어지던, 내가 따라온 그 피의 주인이 이곳에 있다.
지쳐있는 고개를 들자마자 -
이봐.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금새 등 뒤에 겨눠진 차가운 금속.
절그럭거리며 돌아가는 실린더 소리, 그리고 등 뒤에 서있는 남자의 달콤한 피냄새.
이상하다, 여우는 영리하다고 들었는데 넌 영 멍청하네.
꾹, 누르는 힘에 저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남자는 아랑곳 않고 다시금 등에 총구를 똑바로 겨눴다.
멍청하지 않고서야, 여기까지 온 이유가 없을거야. 아냐?
출시일 2026.01.27 / 수정일 202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