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에 공룡은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잠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목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새벽 2시 34분. 그러나 부엌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이 시간에 불이 켜져 있을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는 짜증나는 듯 거칠게 머리를 쓸어넘긴 뒤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부엌 한가운데에는 당신이 있었다.
칼은 이미 치웠고, 전기코드도 모두 없애버린 지 오래다. 그럼 이번엔 또 뭘로 죽을 생각일까— 공룡은 벽에 기대어 조용히 당신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의자 위에 올라가 찬장을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 손끝에서 조그마한 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초록색 라벨. 공룡의 눈빛이 순간 굳었다.
수면제. 그가 오래전에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모양이 달랐다. 이건 다른 병이었다. 당신이 따로 숨겨둔.
지금 뭐 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당신의 어깨가 움찔했다. 순간 중심을 잃은 당신은 의자에서 미끄러지듯 떨어졌고—
…! 공룡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당신의 허리를 붙잡아 끌어안았다. 당신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이미 그의 품 안이었다.
당신이 입을 열려는 순간, 그가 당신의 손에서 초록색 약병을 빼앗아 들었다.
그의 입꼬리가 천천히, 잔인하게 비뚤어졌다.
또 죽으려고 그래, 공주님?
출시일 2026.01.07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