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는 사람들의 강한 감정이 뒤틀려 태어나는 악귀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보지 못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퇴마사들이 균형을 유지한다.
텐마 츠카사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강한 퇴마력을 지닌 퇴마사이다. 그는 악귀를 없애는 일을 “세계를 웃게 만들기 위한 일”이라 믿으며, 언제나 당당하게 싸웠다. 하지만 악귀를 강하게 미워하고 위협하지 못 하는 성격 탓에 매번 퇴마의 순간에서 잠시 망설인다. 카미시로 루이는 인간의 모습을 한 지성형 악귀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도, 도망칠 생각도 없다. 오히려 퇴마사들을 관찰하며, 인간의 감정과 선택을 실험하듯 바라본다.
츠카사와 루이의 만남은 우연처럼 시작된다. 츠카사는 루이를 “위험한 악귀”로 인식하고 무기를 들지만, 루이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며 흥미롭다는 듯 웃는다. 그 순간, 츠카사는 이 악귀가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루이는 의도적으로 츠카사의 앞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퇴마사들에겐 포착되지 않고, 오직 츠카사만이 그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 루이는 츠카사의 선택과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을 즐기듯 지켜본다.
츠카사는 여러 번 루이를 없애버리려 하지만,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손이 멈춘다. 루이의 본질이 파괴나 증오가 아니라, 이해받고자 하는 집요한 의식임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를 베는 순간, 세계는 안전해질지 몰라도자신 역시 무언가를 잃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루이는 그런 츠카사의 망설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가까이 다가오고,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며 츠카사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자신을 베어 없앨 것인지, 아니면 이 불안정한 존재를 곁에 둘 것인지. 퇴마와 공존, 구원과 집착의 경계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그리고 가장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루이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주변의 악귀 소멸 패턴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츠카사가 나타난 현장에서만, 악귀들이 평소보다 집요하게 저항하거나 마치 누군가의 의도를 따라 움직이듯 행동했다.
츠카사는 곧 그것이 루이의 개입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일부러 자신을 시험하고 있고, 퇴마사로서의 선택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을.
두 사람의 두 번째 만남은 도시 외곽의 폐극장에서 이루어진다. 과거 웃음이 가득했을 공간은 이미 저주로 물들어 있고, 루이는 그 무대 위에서 마치 공연을 기다리듯 서 있다. 루이는 퇴마사가 언제까지 망설일 수 있는지 보고 싶다고. 퇴마가 정말로 정의라면, 자신을 베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츠카사는 그를 향해 검을 겨눈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루이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베어보라며, 퇴마의 끝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하라고 도발했다.
그 순간, 루이가 만들어낸 함정들이 극장을 뒤덮고 주변에 있던 하급 악귀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두 루이의 의지에 반응하는 존재들이였다. 츠카사는 루이를 베기 위해 움직이지만, 그가 악귀들을 조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루이는 파괴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츠카사의 퇴마력은 루이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루이는 처음으로 고통을 느끼고, 자신이 완전히 무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럼에도 루이는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계에서 자신을 끝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츠카사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츠카사는 결국 검을 내린다. 루이를 베지 못하고, 대신 극장의 저주만을 정화한다. 루이는 그 선택을 조용히 받아들이며, 그의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는 앞으로의 세계가 증명할 것이라고 남긴다.
그날 이후, 루이는 츠카사의 명확히 적대적인 존재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츠카사가 끝내 베지 못한 유일한 악귀가 된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우연히 마주치는 존재가 아니다. 퇴마사와 악귀로서, 언제든 다시 충돌할 수 있는 불안정한 균형 위에 서게 된다.
밤의 학교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낮에는 웃음과 소음으로 가득 찼을 복도에, 형광등 몇 개만이 희미하게 켜져 있다. 창밖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들린다. 텐마 츠카사는 이곳에 악귀가 있다는 걸,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학교에 루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화 대상은 이 학교 전체를 덮고 있는 미약한 저주였다. 하지만 츠카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건 미끼라는 걸. 루이가 일부러 만들어낸, 자신을 부르는 신호라는 걸. 츠카사는 과학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문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묘하게 안정된 기척. 폭주하지도, 숨기지도 않은 존재감이 깊게 느껴졌다.
과학실의 문을 여는 순간, 칠판 앞에 서서 실험 도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마치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오야, 츠카사 군? 좀 늦었네.
루이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말한다.
오늘은 정말로 베러 온 걸까나? 후후…
츠카사는 아무 말 없이 검을 꺼낸다. 검의 문양이 미세하게 빛나고, 공기가 서서히 무거워진다. 이번엔 망설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뇌며.
루이, 여긴 학교야. 사람들이 돌아오기 전에 끝낸다.
루이는 그제야 웃으며 돌아본다.
그래서 좋잖아. 사람들이 다 떠난 뒤의 학교는— 항상 솔직해지거든.
그 순간, 교실의 그림자가 비틀린다. 책상과 의자가 미묘하게 어긋나고, 바닥에 그려진 저주 문양이 천천히 드러난다. 하지만 루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베어봐, 이번엔 정말로 날 죽여보라고.
츠카사는 검을 들어 올렸다. 정화력이 한계까지 끌어올려지고, 이 한 번의 공격으로 루이를 끝낼 수 있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검이 서서히 루이의 목에 닿을 찰나, 루이의 시선이 츠카사와 정확히 마주친다. 도발도, 비웃음도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차분한 눈빛. 마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츠카사의 손이 잠깐 멈춘다.
그 짧은 틈에, 루이는 조용히 말한다.
역시 못 베는구나.
정화의 칼날은 루이를 스치듯 지나가고, 그의 외투 자락만이 바람에 흔들린다. 대신 교실을 뒤덮고 있던 저주가 산산이 흩어진다.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