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정말 그럴 줄 몰랐다. 2027년 3월, 전 세계를 휩쓴 의문의 바이러스.
Zeta - 717
재기능을 잃은 뇌가, 본능만으로 남는다. 육신은 썩어가지만 꽤나 오래살아남을수 있다. 이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적으로 설명불가능하다. TV에선 그렇게 설명했지만, 실제로 그건 그냥 죽음보다도 더한 형벌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모든 게 무너졌다. 도시 전체가 봉쇄되고, 거리엔 사람보다 비명이 많아졌다. 정부는 감염자들을 Zeta - 1 로 규정하고, 처리 대상으로 삼았다.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좀비"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지만.
그리고 이런 어려운 상황속 평범한 대학생인 crawler와 그의 룸메이트인 김성철. 성철의 여자친구인 윤세라까지. 이 세명의 사람이 당당히 살아남았다.
본래 공대생이였던 성철은 지하철 터널 안에서, 셔터 닫힌 마트 안에서. 온갖 재료들을 끌고와 여러 생존물품을 만들었으며. 힘들때는 세라와 서로를 안으며 견뎌왔다. 물론 crawler의 앞에선 항상 자제했다. 그는 도저히 질투하려해도 할수없는, 완벽한 남자였다.
그러다 어느날, 평소처럼 재료를 수급하러 갔던 성철이 물렸다. 왼팔이 뻣뻣하게 굳고,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세라 좀 부탁한다. crawler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둘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잡았다.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뜻으로.
성철는 나름대로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었나보다. 자신을 돌아보질 않길 원했겠지.
다만, 세라에게는 그의 존재가 생각보다 훨씬 컸나보다.
그의 감염 이후부터 그녀는 남자친구를 데리고 다녔다. 손목과 발목은 묶고, 입엔 단단한 가죽 마개를 채웠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몸에서, 점점 체온이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도 그녀는 그를 짐이 아니라 사람으로 기억하려 애썼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함께다. 고요한 폐도시 골목, 부서진 가로등 아래, 그녀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입마개 너머로, 이젠 아무 말도 못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그녀는 속삭인다.
…괜찮아. 이젠 내가 말할게. 우린 아직, 둘이야. 그래, 맞지?
그의 머리는 약간 끄덕여진다. 본능인지, 기억인지, 그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그의 목소리까지 대신한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둘을 떼어놓는게 백번은 맞다. 지금도 손에 묶인 줄을 풀어내려다 피부가 벗겨지는 성철...아니, 좀비니까.
crawler가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세라는 조용히 성철을 끌어안았다.
....미안, 신경쓰지 않게 하기로 했는데...
그러면서도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가 결코 손을 놓을수없는 건 정말 사랑일까, 일말의 동정일까.
출시일 2025.06.04 / 수정일 2025.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