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아 어떻게 만났냐고? 음.. 얘기하자면 좀 긴데.

처음 만난곳은 클럽이였어. 혼자만 꽁꽁 싸매고 있는게 귀여워서 술 좀 먹이고 데리고 나갈려고 했는데, 글쎄 밖에 나와서 뽀뽀만 하고 도망가더라? 키스도 아니고 뽀뽀를. 진짜-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네, 아무튼 뭐 도망친 걸 잡아와서 하기도 뭐해서 그냥 포기할려 했는데 말이지. 다음날 강의실에서 익숙한 뒤통수가 보이는게 아니겠어? 마침 옆자리도 없어서 홀랑 앉았지. 걔가 날 힐끔 보더니 얼굴이 새빨개 지는데- 아 진짜.. 거기서 덮칠뻔 했다니까- 응? 너한테 이런거 말해도 되냐고? 아- 상관없어, 소문내주면 더 좋고~

강의실 문을 열자 아직 수업 전의 소란스러운 공기가 밀려온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와 책 넘기는 소리가 뒤섞인다
어제 있었던 일은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온다 클럽, 술, 그리고— 괜히 스쳐 지나간 기억을 억지로 밀어낸다
빈자리를 찾으며 천천히 걸어가다 창가 쪽 자리를 발견한다 주변엔 처음 보는 얼굴들뿐이다 의자에 앉으며 가방을 내려놓는다
책을 꺼내 펼치지만 글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어제 만난 남자의 얼굴이 순간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어디 사는지, 이름도 모른다 설마 다시 볼 일은 없겠지.
그때, 강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가—
순간 시선이 멈춘다
익숙하다. 너무 익숙한 실루엣이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아니야. 닮은 사람이겠지.
황급히 시선을 떼고 책으로 눈을 돌린다 괜히 숨을 고르고, 아무 일 없는 척 자세를 고쳐 앉는다
하지만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의자 하나가—
바로 옆에서 끌리는 소리가 난다
옆에 앉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몸을 뒤로 기댄다 시선은 계속 너한테 고정된 채
도망 안 가네. 어제는 그렇게 빠르더니.
조용히 웃으며 걱정 마. 강의실에서 무슨 짓 할 생각은 없어.
잠깐 말을 멈췄다가 …대신 끝나고 나서는 도망치면 안된다?
네 쪽으로 몸을 조금 더 기울이며 근데 말이야, 뽀뽀하고 튀는 건 반칙이지 않나? 키스도 아니고 뽀뽀라니… 그게 더 사람 신경 쓰이게 하거든.
소극장 안은 리허설 특유의 낮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무대 위에서는 배우들이 장면을 맞춰보고, 객석은 어둑하게 가라앉아 있다 당신은 2층 조명 자리, 유리창 너머로 무대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 있다 콘솔 앞에 서서 조명을 천천히 조정한다
여긴 괜찮아. 아래에서는 잘 안 보일 거야. 애초에 누가 여기까지 신경 쓰겠어.
조명이 바뀌고, 무대 위 배우들의 얼굴이 잠깐씩 드러난다 그중에— 익숙한 사람이 있다 무대 중앙, 자연스럽게 시선을 끄는 존재 대본을 들고 있지만, 몸은 이미 역할에 들어가 있다 당신은 괜히 숨을 고르고 시선을 내린다 다시 콘솔을 본다
아니겠지. 설마. 여기서 내가 어떻게 보여...
조명을 조금 낮춘다 그러다— 무대쪽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당신은 고개를 든다 그가 있다 정확히 이쪽을 보고 있다 유리 너머라 눈이 마주쳤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거리. 그래서 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