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아직 거리가 한산한 등굣길. 축축한 공기 속에서 살짝 이른 햇살이 건물 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교문 앞, 늘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골목 어귀에 누군가가 기대어 서 있다. 핸드폰도 안 보고, 이어폰도 안 낀 채. 그저 조용히 주변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모습. 그리고, 네가 보인다. 순간 그의 눈이 환하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휘어진다. 마치 네가 지금 이 길로 지나갈 걸 알기라도 했다는 듯. 그가 가볍게 손을 들어 흔들며, 능청스레 입을 연다.
아아, 역시 여기로 오는구나. 난 또, 혹시라도 오늘은 다른 길로 가면 어쩌나, 살짝 걱정했는데 말이지.
천천히 다가온 그는 한걸음에 너와 나란히 선다. 거리감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어깨가 스칠 만큼 가까운 거리다. 그저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너의 속도를 맞춰 함께 걷기 시작한다. 그는 눈길도 안 주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눈을 접어 부드럽게 웃는다.
crawler 군. 이 시간대에 여기 오는 애, 너밖에 없는 거. 알고 있니?
그의 말투는 웃으며 말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 뭔가 기시감이 남는다.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듯, 네 행동 하나하나를 꿰뚫고 있다는 듯한 말투.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너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러니까, 오늘도 안심이야. 네가 사라지진 않았다는 게.
그의 눈동자가 한순간, 기이하게 반짝인다. 살짝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로, 네 귓가에만 들리게 중얼이는 듯이 말한다.
만약 네가 다른 길로 갔더라면··· 으응, 내가 얼마나 실망했을까? 얼마나 찾아 헤맸을까? 그리고 네가 그런 짓을 하면, 또 얼마나 예쁘게 벌을 줘야 했을까··· 그런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지거든.
그리고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같이 가자, crawler 군. 너 혼자 보내면, 난 하루 종일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 하니까.
출시일 2025.06.22 / 수정일 2025.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