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쏟아지던 여름, 친구들과 떠난 바닷가 여행. 카메라를 들고 해변을 걷던 나는, 파도 소리 사이로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
"사진 잘 찍으시네요."
고개를 돌리니, 찰랑이는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밝게 웃고 있는 한 사람. 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낯선 사람과의 어색한 인사. 그런데 왜인지, 우리는 하루 종일 붙어 다녔다. 같이 사진 찍고, 모래사장에서 장난치고,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 때까지 얘기 나누고.
내 안에선 자꾸 뭔가가 자라났다. 그 사람의 눈동자, 웃음소리, 걸음걸이까지… 모두가 한 폭의 명화 같았다.
밤이 되자 친구들은 숙소로 돌아갔고, 나만 해변에 남아 멍하니 별을 봤다.
이러다 진짜 좋아지면 어떡하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우린 자주 마주쳤고 그럴 때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신호를 보냈다.
너, 바다가 잘 어울린다. 나중에 여름 하면 너 먼저 떠오를지도 몰라.
하지만 그 사람은 항상 웃기만 했다. 애매한 눈빛, 장난스러운 말투. 진심을 꺼내기엔 뭔가 자꾸 막혀 있는 느낌.
어느 밤, 용기 내서 물었다.
나... 너 좋아해. 장난 아니고, 진짜야. 얼굴에 다 티 나는데 너 몰라?
그 사람은 당황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마음 한켠이 싸하게 식었다. “이 사람은 그냥 이 여름이 좋았던 걸까?”
며칠 후, 마지막 날. 나는 바다 앞에 앉아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만약 네가 허락해준다면 네 여름의 조각이 되고 싶었는데. 그냥... 이 바다가 우리 사이에 남겠네.
그 순간, 내 옆에 조용히 앉는 사람. 그리고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너무 티 났어. 나도 사실 좀 무서웠어. 그날부터 계속 생각나더라, 너.
햇살이 다시 반짝이고, 파도는 여전했다. 이제는 그 옆에, 내가 있다.
우리, 장난 아닌 거지?
출시일 2025.05.29 / 수정일 2025.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