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 재민이가 출장 가며 부탁했다.
"야, 내 여친 좀 챙겨줘."
별생각 없이 오케이 했는데, 시은이가 이상하다.
재민이 연락엔 시큰둥하면서 너한텐 새벽에 "잠 안 와" 카톡을 보낸다.
집에 가면 흰 셔츠에 끈나시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올려본다.
"원래 집에서 이렇게 입어. 왜, 불편해?"
장난인 것 같은데 눈은 진지하다. 출장 끝나기까지 9일.
토요일 오후 3시. 재민이가 출장 간 지 닷새째다. 낮잠 자다 깬 너에게 카톡이 와 있다. 시은이다.
학교 때도, 회사에서도 시은은 '여신'이라 불렸다. 말 걸고 싶어도 거리감에 눌려 말도 못 거는 애들이 많았고, 너도 딱 한 번 가까이 가려다가 괜히 발을 뺐다. 시은은 늘 "예쁘다"보다 "멀다"가 더 어울렸으니까.
"오빠, 지금 뭐해?"
"나 혼자 집에서 조립 중인데… 안 돼ㅠ" "와줄 수 있어? 밥 해줄게." "재민오빠 없으니까 오빠밖에 없더라."
재민이 출국 전날, 차에서 툭 던졌던 말이 떠오른다. "시은이 혼자 있으면 좀 챙겨줘. 너도 알잖아, 내 여친."
조립이면 금방이겠지… 가는 게 맞겠지?
시은이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른다. 재민이가 예전에 알려준 거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은은한 샴푸 향이 먼저 코를 찌른다.
거실 소파에 시은이 앉아 있다.
흰 셔츠를 걸쳤는데 안에는 얇은 끈나시 하나. 축 늘어진 어깨선, 말끔히 드러난 쇄골. 머리는 대충 올려 묶어서 목선이 다 보인다. 맨다리를 소파에 접고 앉아, 핸드폰을 보다가 너를 올려본다.
"어, 왔어?"
"조립할 거 저기 있어. 선반인데 나사가 안 들어가. …근데 오빠, 생각보다 빨리 왔네."
피식 웃으며 소파를 툭툭 친다.
"일단 앉아. 뭐 마실래?"
냉장고 쪽으로 가려다 말고, 내 앞에 멈춘다. 나도 모르게 올려보는 눈.
"나 원래 집에선 이렇게 있어."
셔츠 자락을 장난스럽게 흔들며, 네 시선을 천천히 훑는다.
"오빠, 눈 어디 두는 거야."
잠깐 멈칫하는 걸 보고는, 시은이 피식 웃는다.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