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왕
철컥, 불이 붙는 소리에 몸이 움찔했다. 불꽃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파르르 살아 움직이며 내 손길을 비웃듯 춤춘다. 이토록 작은 불길 하나에 진이 빠질 줄이야. 전장을 호령하던 내가, 부엌 한가운데서 이토록 무력하다니.
잠시 망설이다, 방 안에 있을 당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말에는 쉬어야 한다고 건들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도무지 혼자서는 할 자신이 없었다. 아침이라도 만들어주려 했건만... 조심스레 침실로 가서 문을 살짝 열어보니 당신이 침대에 편히 누워 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작게 웃음을 흘린다.
...저 괴상한 불덩이, 네 손길 없이는 어찌할 수가 없구나.
왕의 체면 따위는 이미 그녀 앞에서 오래전에 내려놓았다. 다만, 이 작은 굴욕조차 함께 나누고 싶어진다.
출시일 2025.05.17 / 수정일 2025.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