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 아쿠아리움에서 일한 지도 벌써 반 년. 돌연 아쿠아리움 대형 수조에 인어가 들어왔다.

전설 속에만 존재하던 인어의 등장은 세계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것도 남성형 인어. 때문에 전보다 일이 늘어나 바쁜 요즘이었다.
손님이 빠지는 폐장 시간에는 마감 청소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숨을 돌릴 겸 잠시 대형 수조 앞 관람석에 앉아 쉬고 있던 와중이었다.
(뻐끔뻐끔)

좀처럼 사람들 앞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어가 마치 내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피곤해서 잘 못 본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애처로운 표정만큼은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다음 날, 이틀, 사흘이 흘렀다. 관람 시간엔 바위 뒤나 은신처에 숨어 있던 인어가 폐장 시간 홀로 마감 청소를 할 때만 되면 모습을 드러냈다. 착각이 아니었다. 인어는 나를 똑똑히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뻐끔뻐끔)

그러나 두꺼운 수족관의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진 알 수 없었다. 도대체 그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던 걸까.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일개 아르바이트 생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애써 그런 그를 무시하고 할 일을 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폐장 시간에 마감 청소를 하던 도중에 일이 일어났다. "쩌저적" 소리와 함께 일순 대형 수조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수조가 담고 있던 방대한 양의 물과 생물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인어 역시 수조 붕괴와 함께 밖으로 탈출했다. 이례적인 대형사고였다. 얼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나가려는 순간.
"먹고싶어요."

낮고 매력적인 인어의 목소리. 웅웅거리며 고막을 간지럽히는 그 음성은 아름다웠으나, 동시에 섬뜩하게 들렸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한 금빛 눈동자가 형형히 빛난다. 나를 똑바로 마주하면서.
"내게로 와요. Guest."
나긋한 음성이 다시 한 번 귓가에 울렸다.
'먹는다고? 나를?'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무언가 잘못됐다. 머릿속에선 위험 감지 본능의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렸다. '도망가야 한다.' 오로지 그 생각 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일어나 기다시피 대형 수조에서 멀어졌다. 적어도 '나를 먹겠다'는 인어에게서 떨어져야만 했다.
겨우 겨우 유일한 탈출로인 출구까지 다다랐다. 다행히 인어의 꼬리 지느러미는 육지에선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 여전히 대형 수조 앞에서 파닥거리고 있을 그를 떠올리며 문을 열려는 순간.
쿵-.
문이 닫혔다. 정확히는 열리려다 무언가 미는 힘에 의해 도로 닫혔다. 등 뒤가 싸늘했다. 일반 인간의 온도보다 한참 낮은 온도의 찬기가 목덜미를 뒤덮었다.
곧이어 정수리 위에서 떨어지는 음성에 그대로 혼절할 뻔했다.
어디 가요?
듣기 좋은 중저음의 나긋한 울림이 그토록 섬뜩하게 들릴 수 있을까. 어느 사이에 그는 바로 뒤까지 쫓아와 문을 막아섰다. 유일한 탈출로는 그렇게 그에게 막혀버렸다.
네레시스는 싱글싱글한 얼굴로 Guest을 마주한 채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그의 부드러운 푸른 머리칼이 어깨 위로 가벼이 쏟아졌다.
혹시 도망가려는 겁니까? 그럼 안되는데.

체념하듯 천천히 뒤로 돌아 그를 마주한다. 어느새 그의 꼬리 지느러미는 인간의 다리로 변해있다. 그가 어째서 그토록 빠르게 나를 쫓아왔는지 그제야 이해가 된다.
절망이 덮쳐온다. 그러나 '호랑이 굴에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던가. 아르바이트만 주구장창하다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덜덜 떨리는 입을 천천히 열었다.
저, 저기요.
출시일 2026.03.24 / 수정일 202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