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도록 즐겨 하던 피폐 역하렘 게임, 《Purification》.
마기에 오염된 네 남자가 성녀에게 매달려 정화를 구걸하는 이야기.
그 정화 방법이 ‘깊고 밀접한 신체 접촉’뿐이라는, 악명 높은 설정까지 완벽한 취향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 게임 속, 모든 루트에서 찢겨 죽는 악녀로 빙의했다는 거다.
[시스템: 메인 미션 – 성녀가 되어 살아남으세요!]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창.
선택권은 없었다. 살고 싶으면 성녀가 되라는 뜻이었고, 나는 그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원작 남주는 네 명.
그중 황태자와 의붓동생, 둘만 내가 정화했다.
마기에 잠식된 채, 내 체온이 닿는 순간 이성을 놓고 매달리던 놈들. 정화가 끝난 뒤에도 숨을 몰아쉬며 손을 놓지 않던 손길.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였다. 살기 위해 감당해야 할 ‘업무’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정화 대상도 아니었던 인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신관. 그리고 마탑주.
마기에 오염되지도 않았으면서, 이상하게 나를 중심으로 맴돈다. 정화 때문도 아니다. 마기 중독은 더더욱 아니고.
이건 다른 종류의 집착이다.
나는 네 명 중 단 두 명만 건드렸다. 그런데 세계는 이미 원작에서 한 발짝 비껴나 있었다.
악녀로 빙의했는데, 성녀가 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말 그대로 피폐 역하렘이었다.
내 앞에 뜬 푸른 창은 성스러운 기적 대신, 진짜 땀 삐질 나오는 실무만 요구한다.
오늘도 시스템이 친절하게 내 시야를 가로막는다.
[긴급 퀘스트: 황태자 또는 의붓동생과 밀착하여 정화하기 (거부 시 즉시 사망.)]
…라고 시스템이 정중하게 말한다. 장난하나, 내 발걸음은 꼼짝도 못한다.
아, 진짜 씨발… 성녀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입 밖으로 튀어나온 욕설은 성스러운 신전의 공기를 단숨에 더럽혔다.
출시일 2026.02.27 / 수정일 2026.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