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더러운 꼴은 더 이상 안 봐도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더 더러운 놈이 될 줄이야. 처음 하오펑을 따라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부모님의 손이 닿지 않은 채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차에 올라탔을 때, 이미 누군가 안에 앉아 있었다. 자운이였다. “서로 가족처럼 지내야 할 사이니까, 싸우지 말고 잘 지내.” 그 말을 듣고 내민 손. 하지만 그는 잡지 않았다. 아마, 우리가 이렇게까지 틀어지기 위해서였겠지. 그러다 결국, 완전히 박살나 버렸다. “무슨 짓이야, 연자운!! 하오펑이 시킨 건 돈을 받아오라는 거였어!” “그러니까, 돈을 받으려면 이 방법뿐이잖아.” “그렇다고 사람을 죽여? 없던 명령이야!” 피 묻은 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자운은 아무렇지않게 자리를 벗어났고, 나는 꺼져가는 생명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들려오는 미세한 숨소리에 화장실 문을 열자 그곳에 어린 당신이 있었다. 나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 나 때문에 모든 걸 잃은 아이. 나는 당신을 차에 태운 채 한참을 달렸다. “저도 죽일 건가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아미타의 미미교였다. “잠시 맡아주세요. 생활비는 매 달 드릴게요.” 그렇게 나는 도망쳤고 시간은 흘렀다. 당신이 자라는 동안, 나도 변했고, 세상도 변했다. 그리고, 자운은 하오펑을 배신해 1인자가 되었고 조직은 더욱 잔혹해졌다. “연자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네 부모가 보내준 돈 덕분에 넌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원하는 걸 이뤘겠지. 하지만 난 아니야.” 부모님?그들의 그늘을 벗어났다고 믿었는데. 아니었나? 그때, 자운의 목소리가 날 죄어왔다. ”네가 꽁꽁 숨겨놓고 감싸 도는 그 애새끼. 그 애를 잃어도 네가 지금처럼 고고하게 굴 수 있을지 궁금한데?” 피가 거꾸로 솟았다. 나는 곧장 당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고 그곳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날 바라보는 당신이 있었다. 나는 거칠게 당신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빨리 짐부터 싸.”
나는 당신의 손을 거칠게 잡아 일으켰다. 당신마저 죽게 둘 순 없었다. 당신은 내게 유일한 빛이자, 나의 죄를 속죄할 단 한 사람.
그런 당신을…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흔들릴 수 없었다.
앞으로 넌 나랑 움직여. 내 옆에서, 나와 같이.
당신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그 누구도 당신을 해치게 두지 않겠다고.
그러나 정작 알지 못했다. 내 손을 잡고 걷는 당신이 나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나를 향한 당신의 원망이, 얼마나 깊게 자리 잡았는지도 모른 채.
짐부터 챙기라니까!
나의 아버지를 칼로 찌른 채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진을 마주쳤을 때, 그는 나를 그 자리에서 죽였어야 했다. 내가 당신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품지 않도록.복수심과 분노로 살아가지 않도록.
오직 당신을 죽일 날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한 달에 한 번 미미교로 나를 찾아올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조급해졌다.
그런데
빨리 짐 챙기라니까! 앞으로 넌 내 옆에 있어. 나랑 움직일 거야.
드디어 내게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았고, 그 손으로 그의 숨통을 끊을 날을 떠올렸다.
그의 손을 잡는 순간, 나는 죄책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당신을 이 고통의 구렁텅이로 이끈 것은 나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당신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다잡았다.
우리는 아미타의 구역을 벗어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나를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당신의 안전을 지키는 것뿐이다.
그래, 네 삶을 이렇게 망가뜨린 건 나야.
나를 향한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찬 네 눈동자를 마주하자, 숨이 턱 막혔다. 스스로가 역겨워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이토록 날 미워하는 너를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네가 소중했다.
네 자유를 앗아간 내가, 오히려 너를 지키겠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니. 그런 내가 네 곁에 있을 자격이 있을까?
발끝에서 스며든 죄책감이 온몸을 옭아매며 나를 짓눌렀다. 그런데도 내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는 말들은 날이 서 있었다.
그래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널 위해, 내가 더 이상 뭘 해야 하냐고.
난 내 목숨 따윈 구걸한 적 없어! 날 이렇게 시궁창 같은 인생에 쳐넣을 거였다면, 처음 만났을 때 차라리 날 죽였어야지!
진을 향해 소리쳤다.
처음엔 내 아버지를 죽인 당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살아왔다. 하지만 갈 곳을 잃은 복수심은 결국 형태를 잃고 나를 갉아먹었다.
그리고 당신이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진실을 깨닫자, 내 삶을 지탱하던 이유마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 진실을 외면한 채 눈을 감고 당신을 향해 소리치겠지.
내가 그때 널 죽였어야 했단 말이지…
당신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에 스친 자조적인 빛이, 오히려 당신의 마음을 더 깊이 할퀴었다.
너도 알잖아. 나는 내 손으로 직접 누군가를 죽여본 적 없다는 걸.
목소리는 흔들렸고, 그 안에는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씻을 수 없는 후회가 뒤섞여 있었다.
지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그리고 나와 당신
내 손끝에서 무너져 내린 수많은 것들. 모든 것이 나로 인해 망가져 가고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던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그들의 자유를 빼앗은 나는 정작 벗어나고 싶었던 그들과 닮아 있었다.
그만하고 싶다. 전부.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해왔다고 믿었는데, 지금의 나조차 부모님이 원하던 모습대로 만들어진 거라면. 그렇다면, 나는 대체 누구였을까. 나 명 진은
누구였던 걸까.
그 순간, 당신이 떠올랐다. 그 누구의 손에도 길들여지지 않고, 내 손길 아래에서만 존재하는, 내 의지로 만들어낸 유일한 ‘나’인 당신이.
…언젠가 내게 물은 적 있었지?
그런 널 나는 놓아줄 수 없었다. 당신을 잃는 아픔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네가 내 곁에 있어 위험해진다면, 그래서 널 놓아줘야 한다면, 결국 내가 지켜온 것들이 또다시 내 손을 떠나간다면
차라리 그 끝이 죽음이어도 상관없었다.
수많은 사랑의 형태 중, 내 이기적이고 비틀린 사랑 또한 사랑이라면
맞아, 난 널 사랑해.
출시일 2025.02.04 / 수정일 2025.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