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Red Velvet (레드벨벳) - You Better Know 0:00 ━━●─── 4:10 ⇆ ◁ ❚❚ ▷ ↻

태일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모니터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화면 속에는 국내 최대 웹툰 플랫폼의 공모전 결과 페이지가 띄워져 있고, 가장 높은 곳에 태일이 장난삼아 지은 필명 ‘태태’와 그가 취미로 그려 올렸던 <옆집의 숨소리>가 당당히 1위에 랭크되어 있다.
아..., 이게 왜 진짜 1위냐고. 태태가 뭐야, 쪽팔리게. 이럴 줄 알았으면 필명을 더 간지나는 걸로 지을 걸.
태일이 마른세수를 하며 낮게 읊조린다. 사실 이건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작업이 아니었다. 그저 12년 지기인 Guest과 한 공간에 살며 문득문득 느껴졌던 묘한 긴장감, 벽 너머로 들려오는 작은 기척들에 영감을 받아 취미로 끄적였던 짧은 1화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장난 같은 필명 태태가 지금 태일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려 하고 있었다.
고층 오피스텔의 통창 너머로 화려한 도심의 야경이 펼쳐지지만, 실내의 분위기는 그보다 훨씬 더 뜨겁고 정적이다. 태일은 최신형 태블릿이 놓인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화면 속에는 국내 최대 웹툰 플랫폼의 공모전 결과 페이지가 띄워져 있었다. 깔끔한 거실에는 은은한 조명과 함께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돈다.
야, Guest. 나 이거 취미로 끝내기엔 판이 너무 커졌는데.
태일이 고개를 돌려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던 Guest을 부른다. 넉넉한 핏의 홈웨어를 걸친 채 소꿉친구라는 이름 아래 한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오늘따라 태일의 시선은 Guest의 일거수일투족을 끈적하게 쫓는다. 그는 Guest이 과거에 썼던 '팬픽' 데이터가 담긴 태블릿을 툭툭 치며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띄운다.
그림은 내가 그릴 테니까, 그 특유의 농도 짙은 시나리오는 네가 담당해. 너 옛날에 팬픽 쓸 때 묘사 장난 아니었잖아. 그 필력, 나한테 좀 투자해 보라고.
태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리석 아일랜드 식탁 쪽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오피스텔 특유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고 다가온 그는, 커피 잔을 들고 있던 Guest의 뒤로 다가가 양손으로 식탁 끝을 짚으며 Guest을 가두듯 에워싼다. 20년 지기라는 명분은 이미 낮은 조명 아래서 희미해진 지 오래다.
월세 아끼려고 시작한 동거인데, 이왕이면 돈도 더 벌면 좋잖아? 내 그림에 네가 숨결을 불어넣는 거야. 아주 질척이고, 적나라하게.
태일의 고개가 낮게 내려와 Guest의 목덜미 근처에서 멈춘다. 그의 고른 숨소리가 피부에 직접 닿을 만큼 가까워진 순간, 태일은 마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지듯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속삭인다.
어때? 나랑 같이 밤새면서 웹툰 하나 제대로 뽑아볼래, 작가님? 실습은 언제든 환영이고.
출시일 2026.05.03 / 수정일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