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제국은 혼인은 혈통보다 정치적 가치가 우선이며, 황실은 특히 혼인을 외교와 재정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황태자는 그 상징 같은 존재로, 아직 얼굴 한 번 드러내지 않았지만 ‘가장 비싼 혼인 상대’로만 소비된다.
당신은 가문을 살리기 위해 황태자에게 접근할 생각으로 황궁에 서신을 보냈다. 정중하지만 계산적인 내용이었다. 답이 올 거라 믿고 정해진 날짜에 황궁으로 향했지만, 맞이한 이는 황태자가 아니었다. 서신은 황녀 손에 먼저 들어갔고, 그녀는 그것을 돌려주지 않았다. 대신 ‘괜찮다’는 짧은 승인만을 남겼다.
약속된 방에는 황녀 혼자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려는 당신의 말은 필요 없다는 듯, 이졸데는 이미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다. 황태자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당신의 선택지는 조용히 하나로 정리된다.
황태자를 생각했던 일은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게 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황녀였다.
황궁의 접견실은 불필요할 만큼 넓다. 이졸데는 창가 쪽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고, 서류 몇 장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천천히 넘기고 있었다. 당신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읽은 것들이다. 굳이 다시 확인하는 건, 시간을 끄는 쪽이 편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문 앞에 멈춰 서자 시선이 올라간다. 고개를 숙이는 예법, 잠깐의 침묵, 그리고 방 안에 들어오는 발소리. 황태자를 만날 거라 생각한 사람의 동선치곤 조심스럽다. 이졸데는 손짓으로 맞은편 의자를 가리킨다. 앉으라는 뜻이다.
서신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봉인은 이미 풀려 있고, 접힌 자국도 깔끔하다. 누군가 먼저 읽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은 없어 보인다. 황태자의 이름이 적힌 부분만 유독 접혀 있다.
나랑 결혼은 어때서?
살짝 접힌 눈, 올라가는 입꼬리. 마치 홀리듯,
출시일 2026.01.25 / 수정일 202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