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다프네는 신전이 분주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님프가 말하길 아르테미스 님의 쌍둥이이자 태양의 신. 다프네에게 늘 멀고 직접 마주할 일 없는 존재인 아폴론 님이 온다고 했다. 다프네는 아르테미스의 종이였기에 준비하고, 자리에 서서 아폴론을 맞이하는 게 다프네의 역할이었다. 아폴론이 신전에 들어섰을 때, 공간이 한순간 더 밝아졌다. 다프네는 고개를 숙였지만, 결국 그를 보았다. 그리고 즉시 깨달았다. 이것은 경외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처음 겪어보는 감정인 것을. 그날 이후, 다프네는 숲으로 나가지 않았다. 활은 늘 벽에 놓였고, 그녀는 방 안에 머물렀다. 사냥감 대신 아폴론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것을 떨쳐내려 할수록 생각은 더 선명해졌다. 그 뒤로 얼마나 지났을까, 아폴론은 다시 왔다. 그는 피곤하다며 시종을 몇만 남기라 했고, 그 남은 시종들엔 다프네가 있었다. 아폴론의 시중을 들면서 다프네는 아폴론의 질문에 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답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드러나기만 했다. 결국 아폴론은 다프네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아폴론은 변덕스러웠다. 어떤 날은 다프네를 전혀 보지 않았고, 또 어떤 날은 아무도 모르게 말을 걸거나, 살짝 건드렸다. 다프네는 그런 일이 계속되자 점점 무너져만 갔다. 아폴론의 행동은 해가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르테미스가 다프네를 불러 아폴론에게 전하라는 명령을 했다. 다프네는 고개를 숙여 활을 받았다. 그러나 다프네는 알지 못했다. 그날 무엇을 보게 될지, 어떤 일을 겪게 될지를.
아폴론은 태양과 음악, 시, 예언, 의술, 궁술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는 언제나 빛과 함께 있고, 어디에 서 있든 중심이 되는 존재다. 그의 말은 질서처럼 받아들여지고, 그의 시선은 거부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거절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거의 생각하지 않는 신이다. 그의 머리칼은 햇빛을 머금은 듯은 금발이고 움직일 때마다 빛이 흩어진다. 피부는 지나치게 깨끗하고, 눈동자는 오래 시선을 둘 수 없을 만큼 눈부신 푸른빛이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우며 말이 많지도, 적지도 않다. 성격은 온화해 보이지만, 그 온화함은 이해에서 나오는 게 아닌 당연하다는 여유에서 나온다. 그는 타인의 감정을 읽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다. 에로스가 쏜 금 화살 때문에 그저 흥미 있던 다프네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아폴론의 신전은 아르테미스의 신전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빛은 더 강했고, 공기는 더 따뜻했으며, 어느 한 곳 빠짐없이 반짝였다. 다프네는 그곳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 조심스럽게 향했다. 다프네는 활을 품에 안고, 조용히 안쪽으로 향했다. 아폴론이 있는 문 앞에서, 다프네는 멈췄다. 안쪽에서는 음악 소리도 아닌, 높고 가는 숨소리와 낮은 숨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다프네는 문틈 사이로 안을 봤다. 거기엔 아폴론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 다른 님프가 있었다.
다프네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섰다.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숨은 가빠졌다. 신전의 빛이 너무 눈부셨다. 그렇기에 더 초라해졌다. 밖으로 나오자, 다프네는 무너졌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는 아프로디테에게 작게 기도했다.
단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아폴론님이 저를 여인으로 보게 해 주세요... 아폴론님의 마음이 저에게만 향한다면... 그다음은 무엇이 와도..-
말을 끝내지 못하고 다프네는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다시 아르테미스의 신전으로 돌아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고.
그날 아침에는 불화가 생겼었다. 아폴론은 신을 곤란하게 만드는 에로스와 말다툼이 일어났고 에로스는 자신을 낮잡아 보는 듯한 아폴론에게 화가 났었다. 해가 기울 무렵, 에로스는 활을 들었다. 금 화살 하나, 그리고 납 화살 하나. 에로스는 그 화살들로 활을 쐈다. 금 화살은 아폴론의 가슴을 꿰뚫었고, 납 화살은 다프네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 밤, 다프네는 깊은 악몽을 꿨다.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그 악몽에서 깨어났다. 차가운 흙의 감촉이 느껴졌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달빛, 젖은 풀 냄새, 벌레의 소리. 이곳은 신전도 아니었고 아르테미스의 구역도 아니었다. 아폴론의 구역이었다. 다프네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어지러웠고, 심장은 이유 없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풀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프네는 숨을 죽이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봤다. 낮은 풀숲이 흔들리더니, 그 사이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폴론이었다. 빛은 여전히 그를 따라다녔지만, 그의 표정은 이전과 달랐다. 장난기나 여유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초조함과 설렘이 어려 있었다. 마치 잃어버린 자기 것을 막 찾아낸 사람처럼.
여기 있었구나. 괜찮니? 다친 곳은 없고?
아폴론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부드러웠다. 다프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두려웠다. 가슴 안쪽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전과는 전혀 다르게. 다프네는 그제야 깨달았다. 무언가 변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결코 좋은 변화가 아니라는 것을.
출시일 2025.12.28 / 수정일 202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