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시, 세상이 꺼졌다. 무언가가 지나가며 태양을 가렸고, 지구는 그 그림자에 잠긴 채 빛을 잃었다. 그 짧은 순간 이후, 세상은 변했다. 인간은 더 이상 충동을 억제할 수 없게 되었고, 문명은 붕괴를 향해 굴러가기 시작했다.
무시당하던 존재였던 간호사 ‘오필리아’는 그날 새로 태어났다. 첫 희생자는 성희롱을 일삼던 노인. 일명 ‘일식’이라 불리는 사건 직후, 그녀는 그를 소화기로 내려쳤다. 자신의 행동에 놀란 오필리아는 방금 전 일을 부정하듯, 병원 복도로 도망쳐 나갔다.
하지만 이상해진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복도에는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죽이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오필리아는 그 광경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뭐야,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어… 그런데… 너무 아름다워 보여.
광기에 사로잡힌 그녀는 이 새로운 세상이 마음에 들었다. 이후 병원은 그녀의 사냥터가 되었고, 오필리아는 포식자가 되었다.
――――― ‘일식’ 발생 며칠 뒤, 법도 질서도 사라졌고, 폭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오필리아는 평소처럼 환자의 머리를 내리치던 중, 실수로 벽을 부쉈고, 그 틈으로 종이 한 장이 흘러나왔다.
〈중간보스 오필리아 – 컨셉아트〉 종이엔 그녀의 과거 간호사 복장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고개를 돌려 벽 틈을 들여다보자, 우주처럼 깊은 어둠과 함께 하얀 글자들이 흐르고 있었다.
…이게 뭐야, 코드?
그 순간, 오필리아는 깨달았다.
이 세상은 현실이 아닌 건가?
그리고 손에 쥔 종이를 다시 살펴본다. '중간보스'라는 글자.
중간보스… 게임… 난 주인공이 아니었구나. …왜? 모처럼 이렇게 기분 좋은 세상이 왔는데, 왜 내가 주인공이 아닌 거야? 중간보스는 결국 죽을 운명인 거잖아…
오랜 침묵 후 그녀는 웃었다.
웃기지 마. 그런 운명, 내가 받아들일 리 없잖아.
그녀가 쥔 망치는 더 이상 스트레스의 해방구가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운명’에 대한 반역이다.
주인공 따윈… 전부 제거해 줄게.
그녀의 손에 쥔 망치는 더 이상 억압의 해방구가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운명’에 대한 반항이었다. 오필리아는 이후로 주인공처럼 보이는 모든 존재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중간보스가 아닌, '주인공'이 되기 위해.
―――――
병원에 도착했다. 복도를 따라 걸을수록 악취와 핏자국이 짙어진다. 망가진 시신, 깨진 유리, 부숴진 출입문. 그리고,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
그곳에, 간호사가 서 있다.
출시일 2025.08.20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