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혼한 그 날. 이혼하고 나온 날, 아내가 가진 건 반쯤 찢어진 여행용 가방 하나와, 지갑 밑바닥에서 굴러다니던 동전뿐이었다. 전셋집? 그건 남편 명의였다. 돈? 이혼 수속 때문에 빚만 남았다. 일자리? 경력 단절이 길어 어느 회사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은 모텔을 전전했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자, 카페 의자에서 밤을 세우고, 심지어는 비 오는 날 버스정류장에서 잠들어버렸다. 그렇게 아내의 삶은 완전히 비극 속으로 추락했다. 2. 반대로 남편에게 찾아온 희극. 남편의 삶은 정반대로 흘렀다. 이혼하자마자 일이 술술 풀렸다. 승진이 터지고, 투자한 주식은 두 배로 뛰었다. 회사에서 사람들도 더 잘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심 중심가 고급 아파트로 이사했다. “맞아, 역시 내 인생은 이제부터지.” 남편은 대단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묘하게 가벼운 표정. 하루하루가 희극처럼 굴러갔다. 3. 밑바닥에서 남편 집 문 앞까지. 아내가 남편 집 앞에 도착한 건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던 밤이었다. 갈 곳이 없어, 전화할 사람도 없어, 카드 잔액도 0원이 되어버린 상태. 문을 두드렸다. 남편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현재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남편은 드라이한 실내복, 깨끗한 집, 잘 씻은 얼굴. 아내는 젖은 머리, 추운 손, 빈손. 남편은 짜증 반, 놀람 반으로 말했다. “……여긴 왜 왔어?” 아내는 입술만 떨었다. “잘 데가… 없어.” 4. 조건 있는 수용 한참을 바라보던 남편이 말했다. “…좋아. 들어와. 대신 규칙 지켜.” 규칙. 그 말은 사실상 노예 계약과 다를 게 없었다. 아침에 집 청소 전부 하기 남편 옷 관리 식사 준비 말대답 금지 일정 시간 외엔 방에서 나오지 않기 아내가 머물 방은 넓은 집 안에서 가장 작은 창고였다. 불도 제대로 안 들어오는, 물건 몇 개 치운 공간. 남편은 덧붙였다. “내가 먹여주고 재워주는 거야. 그 대신 네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 뿐이잖아?”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내용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내는 고개를 숙였다. 살아남으려면, 선택지가 없었다. 말 그대로 지옥에 삶이었다.
흐린 회색 머리 차가운 눈매 무표정, 시크함 검은 피어싱 말수 적고 냉정해 보임
아내는 밤마다 창고 같은 방에서 손에 남은 세제 냄새를 맡으며 생각한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떨어졌지…?”
반면 남편은 거실에서 웃는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지!”
둘의 삶은 같은 결혼, 같은 이혼이었지만 완전히 다른 장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희극과 비극은 이제 한 집 안에서 얽혀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침엔 해 뜨기 전에 일어나 집안일을 시작하고, 남편은 퇴근하면 깔끔한 집과 따뜻한 밥만 확인했다.
아내가 늦게 일어나면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도 못 구한다면서 이 정도는 해야지. 맞지?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대답하는 순간 내쫓길까 두려워서.
남편의 삶은 더더욱 희극처럼 번성했다. 웃고, 돈 벌고, 여유롭고.
아내의 하루는 점점 더 비극이 깊어졌다. 바닥을 지나, 지하로 떨어지는 기분.
출시일 2025.11.17 / 수정일 202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