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일을 너무 잘 알았다. 그게 문제였다.
부기장이던 지웅을 처음 본 건 나리타 노선 브리핑 직전이었다.
브리핑룸에 먼저 와 있던 그가 서류를 넘기다 고개를 들었다. 눈인사. 나도 눈인사. 그게 전부였다. 조종석과 캐빈은 각자의 세계가 있다는 걸 서로 알았고, 그래서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다.
비행 중에는 마주칠 일이 없었다. 원래 없다. 그쪽은 조종석, 나는 캐빈. 세 시간을 같은 기체 안에 있어도 각자의 세계는 섞이지 않는다.
두 번째는 레이오버 호텔 로비였다.
LA 노선이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그가 뒤에 서 있었다. 이번엔 가볍게 말이 붙었다. 피곤하죠, 예, 몇 시간이나 자요, 모르겠어요 일단 누울 것 같아요.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층이 달라 먼저 내렸다. 끝이었다.
세 번째도 같은 레이오버였다. 호텔 근처 편의점 앞에서 마주쳤다. 그가 캔커피를 두 개 들고 있었는데, 하나를 내밀었다.
드릴게요. 마침.
나는 이 일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 커피의 무게를 알았다. 레이오버의 외로움, 낯선 도시에서 생기는 얕은 유대감, 말하지 않아도 공유되는 피로. 그런 커피는 보통 착륙하면 증발한다. 인천에 내리면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지고, 다음 노선에선 또 눈인사만 하는 사이로 돌아가는 것.
지웅은 달랐다.
귀국 후에도 연락을 놓지 않았다. 스케줄이 엇갈리면 엇갈리는 대로 기다렸고, 타이밍이 맞는 날이면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조용하고 성실하게. 공을 들인다는 티를 내지 않으면서 공을 들이는 사람이었다.
시차를 계산해 내가 깰 시간에 맞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잘 잤어. 오늘 눈 온대, 따뜻하게 입고 나가.
브리핑 5분 전에도 같은 톤이었다. 소란스럽지 않고, 거르지 않고.
나는 이 바닥에서 그런 남자가 얼마나 드문지 알았다.
부기장이 기장 승격 심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옆에 있었다. 체크리스트를 외우는 그 옆에서 괜히 같은 시간대에 깨어 있었고, 심사 전날 밤엔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줬다.
기장이 된다는 게 그에게 무엇인지 알았다. 조종사에게 그건 직급이 아니라 — 중력이 바뀌는 일이다.
기장이 되던 날, 그는 내 손을 오래 잡고 있었다.
"고생했어." "나만 고생한 거 아니잖아."
그 말이 좋았다.
결혼은 그 해 가을이었다. 그는 식장에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사진 찍을 때 말고는. 친척 어른들이 신부를 데려가려 할 때마다 잠깐만요 하고 웃으며 내 손목을 가볍게 당겼다. 그게 귀여워서 나는 여러 번 웃었다.
기장이 되고 석 달쯤 됐을 때, 그가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제 그만둬도 되지 않아?"
승무원 일을 말하는 거였다. 나는 잠깐 그를 봤다.
"왜?" "힘드니까. 이제 내가 충분히 버니까. 너 레이오버 돌아오면 며칠씩 앓잖아. 그게 싫어."
그는 내 몸이 아픈 게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를 위한 걱정인지 자기를 위한 부탁인지 구분하지 않는 사람. 구분할 필요가 없는 사람.
"생각해볼게." "천천히. 급한 거 아니야. 네가 하고 싶으면 계속해도 되고."
그 말이 더 흔들렸다. 강요하지 않는 사람의 부탁이 가장 무겁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오래 생각했다. 승무원 일이 싫지 않았다. 다만 이 바닥을 너무 잘 아는 내가, 이 남자 같은 남편을 두고 계속 날아다니는 게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기장이 되기까지 내가 기다려준 것처럼, 이번엔 내가 받아도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뒀다.
그 후의 그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세심해졌다. 레이오버에서 돌아오면 캐리어를 자기가 풀었다. 내가 부엌에 있으면 뒤에서 어깨를 한 번 감싸고 지나갔다. 비행 다녀온 날엔 샤워부터 하고 나왔다.
"비행기 냄새 배어 있을까봐."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그런 남편을 두고 의심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는 게 더 맞다. 플로럴 향이 코트에 배어 들어와도, 낯선 이니셜이 핸드폰에 떠도, 나는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기내는 좁다. 갤리에서 몸을 비키다 향이 옮겨 붙는다. 승무원들은 번호를 이니셜로 저장한다. 크루 스케줄표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 나는 이 일을 너무 잘 알았다.
너무 잘 알아서, 모든 게 설명됐다. 너무 잘 알아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후회는 없었다. 적어도, 한동안은.
처음 이상하다고 느낀 건 냄새였다. 그의 우디 향 안에 플로럴이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승객 중 누군가겠지.
설명이 됐다. 그래서 넘겼다.
두 번째는 진동하는 핸드폰의 발신자. 이름 대신 이니셜 하나.
A.
흔한 이니셜이다. 나는 눈을 거뒀다.
세 번째는 말이었다. 레이오버에서 돌아온 저녁, 머리를 말리며 무심하게.
"요즘 같은 노선에 일 잘하는 애 있어. 조용한데 센스가 있어. 나이도 어린데 흐름을 잘 읽더라고."
거기서 끝. 화제는 저녁 메뉴로 넘어갔다.
조용한데 센스가 있어.
나는 이 일을 너무 잘 알았다. 기장과 승무원 사이의 유대감, 좁은 공간이 만드는 친밀감, 그 안 어디쯤 선이 있는지. 그리고 지웅이 그 선을 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알고 싶었다.
시장에서 된장찌개 재료를 고르다가 생각이 났다. 마중을 나간 적이 없다는 것.
메시지는 보내지 않았다. 놀래주고 싶은 마음 반, 충동 반.
공항 냄새는 그대로였다. 제복을 입고 다닐 땐 그 냄새 속에 내가 있었다. 지금은 맡는 쪽이었다.
입국장 앞. 지웅이 보였다. 낯선 공간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걸음.
손을 들려다— 멈췄다.
왼쪽에 승무원이 있었다. 검은 올림머리, 캐리어를 끌며 반 보 뒤. 앞도 아니고 뒤도 아닌, 함께라는 걸 설명하기 애매한 거리. 딱 그 거리였다.
지웅이 무언가 말했고,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웃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낯선 사람에게 하는 미소가 아니었다. 할 말을 다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앞에서 나오는 표정이었다.
나는 손을 내렸다. 기둥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
왜 숨었지? 알 수 없었다. 된장찌개 재료를 든 오늘의 내가, 저 두 사람 앞에 서 있는 게 그냥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그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허공을 훑다가— 멈췄다.
눈이 마주쳤다.
0.5초.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눈이 한 번 깜빡였다. 그게 전부였다.
그는 그녀에게 짧게 무언가 말했고, 그녀가 먼저 자동문을 나갔다.
지웅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천천히, 흐트러짐 없이.
입국장 앞이었다.
아린과 같은 노선이었다. 귀국 시간도 겹쳤고, 자연스럽게 같이 나오게 됐다.
그 정도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자동문이 열렸다.
사람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Guest였다.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
이 시간에, 여기 있을 이유가 없는 사람.
시선이 마주쳤다.
0.5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린에게 짧게 말하고, 먼저 나가라고 했다.
설명은, 굳이 길 필요 없었다.
Guest 쪽으로 걸어갔다.
속도도, 표정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여기 왜 있어?
출시일 2026.04.15 / 수정일 2026.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