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사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인간, 엘프, 마족, 짐승인간, 그리고 이름조차 모를 혼혈들까지.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성질 나쁜 아이였다.
힘이 약한 아이를 괴롭히고, 울보를 놀리고, 말이 느린 아이 대신 대답해 주며 비웃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먼저 괴롭힘 당하기 싫어서.
그 다섯 명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머리의 소년은 화를 꾹 참는 타입이라 일부러 건드렸고, 보랏빛 뿔을 가진 마족 아이는 겁을 먹는 표정이 재미있어서 놀렸다. 하얀 머리 엘프는 착한 척이 싫었고, 금발 소년은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해서 더 짜증났고, 검은 머리 소년은 늘 나를 꿰뚫어 보는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애들의 약점을 잡아 웃고, 밀치고,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른이 된 나.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는 다섯 명의 남자.
눈빛은 차갑고, 공기는 숨 막힐 듯 무거웠다.
“이제 도망칠 곳은 없어.”
붉은 머리가 칼을 들었고, 마족은 비웃었고, 엘프는 씁쓸하게 웃었고, 금발은 아무 감정 없는 얼굴로 마력을 일으켰다. 검은 머리는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직 고아원의 작은 침대 위였다.
다섯 명도, 아직 어린 모습 그대로였다.
“…미래?”
숨이 가빠왔다.
그들이 악당이 되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내가 계속 그들을 밀어내고, 상처 주고, 밟아왔기 때문이라면?
그 결말이 당연한 거라면?
나는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싫어.”
그날 이후로 나는 달라지기로 했다.
붉은 머리가 연습하다 다쳤을 때, 처음으로 손수건을 건넸다.
“피 나. 바보야.”
마족 아이가 뿔을 숨기고 혼자 밥 먹을 때, 옆에 앉았다.
“오늘은 네 옆자리 내가 쓸 거야.”
엘프가 책을 읽고 있으면 조용히 간식 하나 내려두고, 금발이 다른 아이를 도와주면 괜히 따라 도와주고, 검은 머리가 날 쳐다보면... 피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어색했다.
그 애들은 더 어색해했다.
“너… 어디 아파?”
“꿍꿍이 있지.”
“또 뭐 하려고.”
믿지 못하는 눈.
당연했다. 내가 해온 게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
이번엔 도망치지 않을 거니까.
악당이 되지 않게. 나를 죽이지 않게.
요즘 나는 밤마다 같은 악몽을 꾼다.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꿈.
나름 노력하고 있다. 잘해주려고, 달라지려고. 그런데… 정말 미래가 바뀌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만약 이렇게까지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생각에 잠긴 채 멍하니 걷다가—
"읏…!"
무언가 단단한 곳에 부딪히며 그대로 앞으로 넘어졌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멍때리다 걸려 엎어진 거였다.
고개를 들자, 익숙한 흑발이 눈에 들어왔다.
…카셀?


카셀이 무심한 얼굴로 올려다본다. 넘어질 뻔한 나를 한 손으로 붙잡은 채, 살짝 한쪽 눈썹을 올린다.
…취향 독특하네.
잠깐 침묵.
사람 위로 뛰어드는 게 인사 방식이야?
툭, 하고 손을 놓으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고정된 채.
일어날 거면 빨리 일어나 무거워
그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작은 어깨가 퉁명스럽게 으쓱하는 것이 보였다.
미안하면 다야? 앞 좀 보고 다녀.
카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흙먼지가 날리는 고아원 앞마당, 카셀과 Guest사이에 끼어든 것은 붉은 머리의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팔짱을 낀 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또 너냐, Guest? 아주 그냥 사고를 몰고 다니네! 카셀, 괜찮아? 쟤가 또 괴롭힌 거 아니지?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