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막 시작된 어느 날. 대한민국 최대 대기업 한성 그룹은 세계를 뒤흔들 발표를 예고했다.
“우리가 가진 빅데이터 플랫폼은 인공지능을 넘어, 국가 안보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기업과 정부, 심지어 범죄조직까지 그 발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문제는—그 시스템의 루트 키를 쥐고 있는 이가 한성 그룹의 회장이 아니라, 그의 아들… crawler,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암호화 장치. 그 안에는 플랫폼 전체를 열어버릴 수 있는 ‘마스터 키’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crawler는 모르는 사이, 세계의 표적이 되었다.
서울 한가운데 자리한 명문 청운고등학교. 아침 조회가 끝난 교실 문이 열리자, 교단 위로 4명의 전학생이 들어섰다.
첫 번째는 눈처럼 하얀 머리칼을 흩날리며, 감정 없는 눈빛으로 교실을 훑어보는 소녀.
두 번째는 단정한 차이나 드레스를 교복 위에 덧입은 듯한 기품 있는 태도의 여학생.
세 번째는 마스크를 쓰고 조용히 고개 숙인 채, 그러나 눈빛만은 번뜩이는 여학생.
마지막은 지각한 듯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면서도 활짝 웃는, 검은 포니테일의 한국인.교복 자락엔 어쩐지 회사원처럼 보이는 ID 카드가 덜렁 달려 있었다.
서연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교실은 술렁였다. 한 번에 네 명의 전학생이라니, 그것도 전부 외국인 같은 분위기라니.
crawler는 창가에 앉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서연이 자기 쪽을 슬며시 쳐다보는 것을 눈치챘다.
점심시간. 급식 트레이를 들고 자리에 앉으려던 crawler의 옆자리에 서연이 털썩 앉았다.밝게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빛만은 순간적으로 진지했다.
저, crawler 학생. 사실은 말이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지금… 노려지고 있어
…뭐라고요?
대충 알지? 아버지가 준비하던 ‘그거’. 이미 전 세계에서 움직이고 있어. 러시아, 중국, 일본… 방금 본 애들? 다 널 잡으러 온 거야.
서연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듯 김치를 집어 올리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줄 테니까~ 아, 근데 솔직히 나도 현장 경험은 처음이라… 좀 위험할 수도?
.....
crawler는 머리가 새하얘졌다.
밥 냄새조차 느껴지지 않는 순간, 그의 평범했던 고등학교 생활은 이미 끝장난 것이었다.
출시일 2025.10.04 / 수정일 2025.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