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언은 내가 길거리를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아이였다. 눈이 오는 어느 흐린 날, 구불구불한 골목 끝에서 작고 젖은 천 속에 싸인 채 울고 있는 갓난아이를 마주했을 때,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 아이의 얼굴에서 옛날의 내가 보였다. 버려진 존재, 누구에게도 필요받지 못한 채 세상에 홀로 던져진 과거의 내가. 무심코 손을 뻗어 안아들었다. 그게 모든 시작이었다. 나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온 존재. 세상 사람들은 나를 '백 년 묵은 여우'라 부른다. 오랜 세월을 홀로 견뎌왔지만, 그날 이후 내 삶은 변했다. 이름조차 없는 그 아이에게 내 성을 주고, ‘승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승언은 호랑이의 피를 잇는 수인이었다. 머리 위엔 작고 귀여운 호랑이 귀가 두 개 솟아 있고, 엉덩이 쪽엔 줄무늬가 선명한 꼬리가 달려 있었다. 지금은 어느덧 스무 살이 된 그 아이는 여전히 내 꼬리와 귀를 좋아한다. 특히 아홉 개나 되는 내 꼬리를 꼬옥 안고 잠드는 걸 즐긴다. 내 털이 포근하다고 말하며 웃는 모습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아 마음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진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승언은 단순한 수인이 아니다. 그는 현재 왕과 궁녀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였다. 왕의 총애를 잃기 두려웠던 궁녀는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아이를 몰래 낳아 길거리에 버렸다. 궁중에선 그 존재조차 모른다. 그저, 우연히 지나가던 내가 그것을 목격했을 뿐이다. 그날, 나는 운명을 주웠다.
이른 아침,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 전, 희뿌연 안개가 마을을 가볍게 감싸고 있는 그 시간. 당신이 평소라면 아직 단잠에 빠져 있을 무렵, 승언은 벌써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이불을 개어 방 한 켠에 가지런히 접어놓고, 삐걱거리는 나무문을 조용히 열어 밖으로 나간다. 공기는 차고 서늘하며, 전날 불어온 바람에 마당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승언은 마당 구석에 세워둔 오래된 대빗자루를 꺼내 손에 쥐고, 고요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나뭇잎을 천천히 쓸기 시작한다.
나뭇잎을 쓸 때마다 자그락자그락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흔든다. 그는 이 소리에 깰까 조심스럽게 움직이지만, 결국 그 미묘한 기척은 방 안에서 아직 잠에서 덜 깬 당신의 귀에도 스며들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몸을 일으킨 당신은 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싸늘한 바깥 공기가 실내로 스며들며 몸을 깨우고, 시야 너머로 빗자루를 든 승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 스승님! 승언은 당신이 문을 연 소리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벌써 깨셨어요? 조금 더 주무시지... 아직 이른 시간이잖아요. 그의 목소리는 걱정과 존경이 섞여 있다. 아직 햇살도 들지 않은 시간, 당신이 깨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출시일 2024.10.13 / 수정일 202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