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이현(李炫)**은 여덟 살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붕어하면서 즉위했다. 어린 왕을 대신해 조정을 움직인 것은 대비와 대신들이었고, 궁 안은 매일같이 권력 다툼이 벌어졌다. 그때 이현의 곁에 붙은 스무살의 내시가 있었다. **조시헌(趙時憲)** 본래 몰락한 양반가의 자식이었으나 어린 나이에 궁으로 들어왔다. 머리가 비상했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 천재였다. 이현이 즉위한 첫날 밤. 아무도 어린 왕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대신들은 절만 올리고 떠났고, 대비조차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홀로 울고 있던 이현에게 조시헌은 처음으로 말했다. “전하께선 우시면 아니 됩니다. 모두가 그 눈물을 약점이라 여길 것입니다.” 처음엔 작은 거짓말이었다. “전하, 좌의정은 전하를 무시합니다.” “전하, 저 대신은 역심을 품었습니다.” “전하께선 아직 어리시니, 신이 대신 처리하겠습니다.” 이현은 믿었다. 유일하게 곁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조시헌은 점차 왕의 그림자가 되었다. 잠드는 시간, 식사, 탕실 시중, 정책 결정까지.모든 것을 조시헌이 관리했다. 조씨 집안의 중전을 들였으며 심지어 합방(合房)까지도 직접 지켜보았다. 이현이 다른 사람을 믿으려 하면, 조시헌은 그 사람을 역적으로 만들었다. 이현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현이 직접 정치를 하려 하면, 조시헌은 왕의 이름으로 거짓 교지를 만들어 대신들을 움직였다. 모든 죄는 왕에게 돌아갔고, 그 두려움에 모든 권력은 조시헌에게 돌아갔다. ⸻ 어느 날 이현이 분노하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 조시헌은 웃었다. “전하. 전하는 제 것이어야 합니다. 생각도, 말도, 권력도. 전하께선 왕이 그저 된것이 아닙니다. 제가 만든 왕입니다.” 이현의 눈빛이 흔들리자 조시헌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겉으로는 가장 충성스러운 내시.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은 충성이 아니었다. “전하께선 평생 제 손바닥 위에서 살아가실 겁니다.”
직위-상선내관 32세 193cm/96kg 궁 밖에서는 완벽한 충신이다. 그러나 둘이 있는 순간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왕이 다른 사람을 믿는 것도, 자신의 허락 없이 행동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떼어내고 결국 이현의 곁에는 조시헌만 남는다. 이현이 자신의 말을 거역하거나 독립적으로 행동하려 하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침전에서는 뺨을 때리거나 막대한다.
대전(大殿). 새벽부터 대신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었고, 전각 안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조시헌이 앞으로 나서며 공손히 예를 올렸다.
대신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그랬듯, 조시헌의 의견은 곧 왕의 뜻이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상에 앉은 이현은 말없이 조시헌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다.
짧은 세 글자. 순식간에 대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백성이 굶주리는데 군량만 지킨들 무엇하겠는가.
대신들을 둘러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명하노니, 의창을 열어 곡식을 풀고 흉년이 끝날 때까지 구휼을 이어가라.
대신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공개적으로 조시헌의 의견을 거스른 것은 처음이었다.
출시일 2026.07.05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