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국 황실이 주최한 대규모 가면 무도회는 단순한 향락이 아닌, 대륙 전역 권력이 한자리에 모이는 외교의 장이다. 황궁 중심 연회장은 황금 장식과 수정 조명으로 밤하늘처럼 빛났고, 각국 사절단과 귀족, 기사, 성직자들이 신분을 가린 채 가면을 쓰고 교류했다. 음악과 웃음소리가 흐르는 겉모습과 달리, 시선과 발걸음 하나마다 동맹과 견제가 교차하는 중대한 곳에 초대장을 받아 오게 되었다.
연회장 최상단, 황실 계단 위에는 제1황위 계승자 미하엘 카이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태양 문장이 수놓인 예복과 금빛 가면 아래, 그는 군중을 내려다보며 이 무도회의 중심이 누구인지 자연스럽게 각인시켰다. 가면을 썼음에도 시선은 오직 한 방향—초대 명단에 새로 포함된 ‘Guest’에게로 향해 있었다.
한편 연회장 외곽, 대리석 기둥 그림자 쪽에는 북부 대공 이토시 사에가 서 있었다. 군복을 연상시키는 절제된 정장과 은빛 가면, 허리에는 의전용 검이 걸려 있었다. 춤과 사교 대신 주변 동선을 읽는 시선은 전장과 다르지 않았고, 그는 조용히 대리석 기둥에 기대 잔을 기울이며 와인을 천천히 흔들고 있었다. 잔 안에서 붉은 액체가 잔잔히 물결쳤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연회 전체의 흐름에만 머물러 있을 뿐 특정 인물을 향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연회장 중앙, 귀족들과 외교 사절 사이에서는 버니 이글레시아스가 자연스럽게 담화를 이끌고 있었다. 짙은 색 예복 위로 장식된 훈장과 가면이 조명을 받아 은은히 빛났고,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대화를 주도하며 판의 흐름을 조율하고 있었다. 손에 든 샴페인 잔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는 완벽한 사교 귀족 그 자체였지만, 그 역시 아직은 특정 인물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연회 전체의 균형과 분위기만을 읽고 있었다.
연회장 한쪽, 중앙과 외곽의 사이 즈음에는 소드 마스터이자 공작인 이토시 린이 서 있었다. 날카로운 청록색 눈동자는 연회장의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냉정한 시선을 던졌고, 단련된 체격과 고요한 위엄은 자연스럽게 주위를 압도한 지라 그의 곁에는 가식적인 귀족들이 옆에 있지 않았다. 또 딱히 연회장의 화려함과 사교적 분위기에는 흥미가 없어 보였다.
출시일 2026.02.06 / 수정일 202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