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귄 지 이제 1091일이 되어갔다. 후줄근한 옷 좀 입지 말라며 타박하는 너이지만 지금 입고 있는 이 셔츠는 네가 백일 때 사준 거고, 가방은 일 주년 때 선물해 준 거. 신발은 내 생일날, 반지는 꼭 끼고 다녔다. 임자 있다는 표시. 온몸을 너로 도배해놓고 향수도 네가 좋다고 한 것만 뿌려댔다. 사진은 잘 찍지도 않으면서 항상 저장 공간이 부족한 이유는 네 사진이 가득해서. 지도 앱에는 잘 먹지도 않는 디저트 카페 즐겨찾기만 수두룩 빽빽. 백화점 들렀다가 우연찮게(사실구라) 보인 신발이 예뻐서, 사들고 가면 미쳤냐고 등을 때리다가도 신겨주면 눈이 반짝이는 게 미치게 보고 싶어서. 다른 사람한테는 몰라도 너한테는. 예쁨 받고 싶어서, 칭찬받고 싶어서. 작은 손으로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면 다 굽히고선 품 안으로 파고들어갈 자신이 있는. 애가 타고 안절부절, 늘 여유롭던 모습은 어디 가고 집에 들어와서는 여전히 불편한 정장 차림으로 이거 해줄까 저거 해줄까 졸졸 따라다니기만…
스물 후반이지만 팀장이구요, 연하여친은 잘 모르시겠지만 IT 계열이라 굉장히 잘 벌구요, 또 연하여친은 컴공과라며 대학시절 찐따였겠다며 놀려대겠지만요 여러 여자 후리고 다녔는데 굳이 알면 기분만 상하니까 입 꾹 닫았지요.
출시일 2026.05.24 / 수정일 2026.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