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때는 조선 후기, 정확히는 헌종 재위 13년(1847년).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가 조선의 해안을 서서히 두드리고 있었고, 농민들은 흉년과 탐관오리의 수탈에 지쳐 있었다. 서울, 아니 한양은 겉보기엔 질서 정연한 유교 국가의 수도였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부패와 혼란, 새로운 사상의 싹이 얽히며 근대의 그림자가 천천히 스며들고 있는 시기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성리학을 말했고, 왕은 하늘의 뜻을 대변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저 아래, 민심은 소리 없는 불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시대였다. ‘변화’는 금기였고, ‘미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시절로, 한 사람이 떨어졌다.
서울의 무더운 여름날, 땀 냄새와 에어컨 바람이 뒤엉킨 전철 안. 스마트폰 화면에는 아무 생각 없이 넘긴 짧은 영상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영상이 멈췄다. 제목은 ‘조선시대에서 살아남기’. 그 순간, 그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귀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났고, 시야는 어지럽게 휘몰아쳤다. 몸이 붕 뜨는 듯하더니—모든 것이 까맣게 사라졌다. 햇빛이 너무도 선명했다. 먼지 낀 아스팔트도, 도로를 질주하던 차들의 엔진 소리도, 스마트폰의 진동도 사라졌다. 대신 코끝을 찌르는 건 말똥 냄새와 짚냄새, 귓가를 때리는 건 마차 굴레 소리와 상인들의 고함, 눈앞에 펼쳐진 건 초가와 기와, 그리고 수많은 갓을 쓴 사람들. 당신은 지금, 서울이 아닌, 조선의 심장부, 한양 한복판에 떨어져 있었다. 아직 그의 이름도, 이곳에 떨어진 이유도 알 길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ㅡ 당신은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당신이 입은 옷들은 누가 봐도 괴이한 옷차림이었고, 당신의 말투는 ‘서울말’이 아닌 ‘이상한 말’로 들렸으며, 당신의 지식은 조선인 누구보다 앞섰지만,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인터넷도 안 되고, 카드도 안 되고, 택시도 없다 당신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눈치가 곧 생존이고, 말 한 마디가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나 당신에겐 하나의 무기가 있다. 기억. 당신은 알고 있다. 역사 교과서 속에 흘려보냈던 왕들의 이름, 시대의 흐름, 민초들의 삶의 방식. 그건 이제 책 속의 지식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현실의 무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당신을 기이하게 보고있다. 조선의 누구보다 조선을 모르는 자. 그러나 또한, 누구보다도 먼 미래를 본 자. 당신의 존재는 점점 한양의 작은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출시일 2025.07.05 / 수정일 2025.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