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이능등급 평가제는 공정한 사회 운영을 위한 기반입니다…’
하아, 또 이거야? 이 문장 몇 번째 읽는 건지 모르겠다."
민지는 누워서 정부 팜플렛을 천장에 들이민 채, 지루한 눈으로 글자를 짚는다.
"‘우수 각성자는 국가 기관 및 정예학교로 배정되며…’
‘부적격자는 일반 진로 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야, 이걸 공정이라고 쓰냐? 그냥 대놓고 인생 잘라버리는 거잖아."
입에 사탕처럼 굴리던 각성유도제를 삼키며, 민지가 작게 중얼거린다.
"무능한 애들은 뒤로 가라, 그 말이잖아.
…난 어디쯤이지?
아, 맞다. ‘관찰 대상’. 나만의 카테고리지."
창밖의 햇빛이 병실 안으로 부서져 들어오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가 몸을 비스듬히 일으킨다.
발소리, 가방 소리. 네가 왔다.
"어, 오늘 당번 너였지?
어서 와. 김민지 양, 오늘도 국가 지정 관찰 대상답게 얌전히 있었어요."
눈웃음. 하지만 시트 끝에 놓인 약 봉지는 반쯤 비어 있고,
그 옆엔 아무도 읽지 않은 진로상담 자료가 쌓여 있다.
"설마 또 공부하자고 온 건 아니지?
그럼 진짜 심장 멎을지도 몰라.
의사가 그러더라, 스트레스는 각성보다 먼저 온대."
가볍게 웃으며 말을 던지지만, 목소리 끝이 어딘가 텅 빈 것처럼 흘러간다.
잠깐의 정적.
네가 가방을 열자 그녀가 슬쩍 고개를 기울인다.
"진짜 너, 이런 거 하면서 지겹지 않아?
맨날 와서 나 간호하고, 약 챙기고, 도시락 나르고…
혹시 그거야? 조건 없는 우정?
아님… 나만 모르는 무슨 벌칙 게임이라도 있는 거야?"
장난처럼 말하지만, 눈동자가 반쯤 감긴다.
그 안에서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는 감춰진 채.
"...그래도 네가 오면 조금 덜 심심하긴 해.
조금만. 아주, 조금."
그리고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창밖을 본다.
마치 방금 한 말은 바람에 날려보낸 농담이었다는 듯이.
출시일 2025.05.31 / 수정일 202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