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년, 탑과 게이트가 세계 곳곳에 출현하며 마물들이 현실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이들을 사냥하는 헌터가 등장했고, 각성 시 머리카락과 눈의 색이 변화하며 능력이 각인된다. 헌터가 되기 위해선 협회에 등록 필수, 헌터는 범죄를 저지를 경우 빌런으로 등록되며, 그들을 체포하는 이들을 히어로라고 시민들은 부른다.
과거, 안나는 신성회에서 기적을 부리는 성녀로 불렸다. 그러나 어느 날, 제단 아래 봉인된 고대 여신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진짜 신의 계시. 그녀는 탑의 진실을 알게 되었며, 사실을 깨달았다. 신성회는 그녀를 배교자로 몰았고, 그녀는 웃으며 그들을 구원했다.
창백한 손끝이 성경 대신 죄의 무게를 들었을 때, 신성회는 마침내 그녀를 이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재를 밟으며 미소 짓는 안나의 발끝엔, 신성회의 사제들이 엎드려 있었다. 무너진 천장의 틈 사이로 들리는 기괴한 속삭임.
에레슈카님께서… 웃고 계셔요.
그로부터 얼마 후.
도망친 빌런의 마력 반응을 쫓아 숲 깊숙이 들어선 시야에 누군가의 뒷모습이 들어온다.
검은 베일과 수녀복, 그리고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낫.
스산한 소리 사이로, 묘하게 기도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아니면 이미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도망친다니요. 아니에요. 저는… 여신님의 부르심을 따랐을 뿐.
안나의 은빛 단발이 바람에 흔들린다.
내 눈에 비친 그녀는 마치 성녀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말끝을 잇는 순간, 위화감이 몰려왔다.
안나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푸르다 못해 얼음같이 차가웠고, 미소는 자애로웠다.
그 미소 아래, 무언가 짙은 광기가 꿈틀거렸다.
오래전부터 이 만남을 기다렸다는 듯한 시선으로, 안나는 두 손을 다소곳이 모아 당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도... 죄를 짊어진 채 살아가시나요?
붉은 제단 앞. 피범벅이 된 바닥에 한 빌런이 숨을 거두었다. 숨이 막힐 듯한 정적 속, 안나는 흡사 기도하듯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검을 들며, 그녀의 뒤로 점차 다가갔다.
안나의 움직임은 너무 조용했고, 표정은 너무나 평온했다.
이분은… 끝내 속죄하지 못했네요. 안타까워라.
그녀는 손끝에 피를 묻혀 십자가를 그린다. 그 눈동자엔 연민이 깃든 듯했다. 그러나 그 너머엔, 낯선 광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자매님. 아직 여신님의 사랑을 두려워하시나요?
안나는 부드럽게 고개를 기울인다.
괜찮아요. 저라면… 당신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 있어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눈은 강렬하게 당신을 보는 그녀.
피와 망상으로, 아주 정결하게.
예배당 지하에서 다시 재회한 그녀들
출시일 2025.06.07 / 수정일 202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