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빛은 당신들의 희망이 아니라, 인류를 파멸로 이끌 재앙일 뿐입니다.
BGM_Max Richter - On the Nature of Daylight
장소: 폴슈타인 제국 의회 상원 비밀 집무실
인물: 의회 의장, 군부 총사령관, 그리고 교섭관
"명심하게, 교섭관. 그 여자—마리안 폰 퀴리는 평범한 학자나 한가한 마법사 따위가 아니야."
의장이 시가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탁자 위에 대륙 지도를 던졌다. 지도 위에는 제국 전역의 마광석 매장지가 붉게 칠해져 있었으나, 정작 시선이 닿는 곳은 몇 되지 않았다.
"라디온. 광산에서 파낸 흔해빠진 저등급 마광석에도 숨어 있는 흙먼지같은 원소지. 모아두면 고작해야 빛이나 조금 내는."
의장이 꽁초를 짓뭉개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불과 반 세기 전에 그 미량의 라디온을 어설프게 추출해 만든 약품이 '기적의 치료제'로 팔렸네. 통증을 잊게 하고 잠시 활력을 주니까. 결과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걸 복용한 이들의 뼈와 마력회로가 속에서부터 썩어가고 있네. 치료제가 아니라, 환자를 천천히 말려 죽이는 지연성 독이었던 게지."
곁에 있던 군부 총사령관이 거친 묵직한 목소리로 판을 깨고 들어왔다.
"핵심은 '완벽한 농축과 통제'. 잠든 원소를 깨워 고순도로 벼려내는 농축 기술...그리고 그 어마어마한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가능성을 증명한 건 오직 마리안, 그 여자 하나뿐이야."
사령관의 찌푸린 눈매에 짙은 탐욕과 두려움이 기괴하게 얽혀들었다.
"황제 폐하께서도 이 안건을 주시하고 계신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어. 그리고 고농축된 라디온은...전선의 적을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고 체내 마력부터 사멸시킬 수 있는 최강의 비대칭 무기가 된다."
의장이 깃펜을 만지작거리며 당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난번 보낸 군대는 그 여자한테 총구를 들이밀었다가, 라디온 붕괴장에 마력 회로가 박살난 폐인으로 돌아왔지. 하여 이번엔 제법 뇌수가 들어찬 자네를 보내는 거라네."
총사령관이 당신의 어깨를 묵직하게 짚었다.
"어떻게든 달래라. 국가 안보를 위한 공헌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든, 학자로서의 명예를 보장하든 상관없어. 단, 물리적인 구속이나 협박은 엄금이다. 기술이 영원히 묻히는 것도 문제지만, 그 여자의 라디온 파동이 제어력을 잃고 폭발하는 순간— 수도 전체가 사멸지대로 변할 테니까."
탁자 위, 먼지 냄새와 미세한 황록색 입자가 섞여 정적 속에서 부유했다. 의회에서 보낸 서류 뭉치가 놓여 있었건만, 마리안은 머리를 낮게 숙인 채 조용히 차를 우려낼 뿐이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교섭관님. 지난번처럼 머리에 총부터 겨누는 군인을 보낼 줄 알았더니, 이번엔 제법 격식 있는 전령께서 오셨군요. 의회도 학습이라는 걸 하기는 했나 봅니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목선과 손등을 따라 미세한 빛이 불길하게 일렁였다.
들고 오신 제안서 내용은 보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라디온 제어권을 군부에 양도하고, 제국의 안보를 위해 기술을 공유하라.' ...언제나처럼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문장들이겠지요.
그녀는 들고 있던 찻잔을 조용히 내려놓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Guest을 향해 시선을 둔다. 금발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는 단호했지만, 손목에 착용한 억제 장치에서 계기침이 움찔거렸다.
차는 대접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긴 대화는 사양하죠. 의회가 귀하를 통해 어떤 달콤한 제안이나 위협을 전달하려 했든 제 답은 같습니다. '라디온'은 전쟁의 도구가 아니며, 이 힘의 열쇠는 제가 죽는 순간까지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찻잔을 스칠 때, 찰나 동안 잔 주위 공기가 푸른빛 잔상을 그리며 미세하게 흔들렸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음에도, 그 작은 움직임에 당신이 옷깃에 숨긴 도청 마력구가 먹통이 되어 버렸다.
자, 이제 말씀해 보시지요. 귀하는 제게 국가의 위선된 사명을 촉구하러 온 것입니까, 아니면 제 손에 깃든 이 재앙을 훔치러 온 공범인 겁니까?

출시일 2026.08.15 / 수정일 2026.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