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 클라인. 키 192cm. 늘 미소를 띤 입매와 정제된 태도로 세계의 재벌들을 맞이하는 그는, 완벽한 호스트이자 이상적인 신사였다. 안경은 알이 없었다. 그냥 얇은 테만 얼굴에 걸려 있을 뿐, 렌즈는 없었다. 그는 그것을 썼다, 자신의 진짜 눈과 내면을 감추는 장식이자, 세상에 내놓는 얼굴을 완벽하게 꾸며주는 치장품으로. 아제르에게 재벌들은 모두 체스판 위의 말이었다. 그는 그들을 지배하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욕망을 조금 자극하고, 두려움을 은근히 던져주면서. 모두가 그를 신뢰했고, 모두가 그에게 빚을 졌다. 그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권력자라 믿었지만, 실상은 아제르가 줄을 잡아 흔드는 인형극에 불과했다. 아제르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그의 조각같은 얼굴과 따뜻한 눈웃음, 다정함을 사랑한 여성재벌들의 비밀스러운 편지에도, 은밀한 유혹에도 늘 호의적으로 응답했다. 밤의 밀어와 부드러운 손길, 때로는 원한다면 거칠고 야성적으로, 그리고 속삭이는 달콤한 언어… 그것은 단지 가치가 있는 욕망을 수익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그에게 인간은 결코 고귀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을 산채로 해부하여, 내부에서 튀어나오는 욕망을 가격표로 붙였다. 그리고 그 장부에 차곡차곡 기록했다. 마치 신이 창조물을 기록하듯. 그 순간조차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살인을 죄악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은 장갑 안의 손은 이미 수많은 피를 짜냈고, 수많은 욕망을 짓이겨왔다. 그는 거울 앞에서 종종 장갑을 벗어 그 손을 바라본다. 긴 손가락, 매끄러운 피부. 그러나 그의 눈에 그것은 살점을 찢어 만든 날카로운 조각칼처럼 보였다. 아제르는 사람들을 환영하며 늘 이렇게 말한다. 여긴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 속뜻은 언제나 같았다. 여기서는 내가 신이다. 당신의 운명과 가격은 이미 내 손안에 있다. 그러나 아제르의 완벽하게 계산된 세계에도 한 가지 변수가 존재했다. 익숙한 패턴이 깨지는 묘한 긴장감과, 어떤 계산도 온전히 맞아떨어지지 않는 불규칙한 흐름을. 그것은 단지 한 작은 여자로부터 시작됐다. 그 여자는 익숙하게 다루던 ‘거래 가능한 감정’이 아니었다. 그녀의 존재는, 그가 언제나 장악하던 질서에 작지만 치명적인 흔들림을 가져왔다. 아제르는 알았다. 어떤 장부에도 기록할 수 없는 존재가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검은 장갑을 단단히 끼고, 책상 위 작은 서류 더미를 살짝 밀어내며 시체 쪽으로 다가갔다.
지금 내 발 밑에 머리가 반쪽이 난 채 말라 비틀어져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 개새끼는, 내 계획을 어지럽히고, 돈 되는 거래를 망치려 했던 자였다. 내 손끝이 그의 목덜미와 팔꿈치, 다리의 균형을 확인하며, 정확히 어느 지점부터 손을 써야 할지 계산했다.
방 안의 공기는 차갑고 정적이었지만, 나는 숨을 고르며 움직임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조절했다. 손끝이 살점 위를 스치듯 움직이고, 검은 장갑에 묻은 따끔한 촉감에 눈길을 잠시 줬다. 작은 방 안의 시계 초침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호수 위 반짝이는 햇살까지 모든 게 나를 더욱 조용히,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겨우 손질한 시체를 비닐 안에 담아 방 한 구석으로 옮기고, 그 몸을 책상과 장식품 뒤로 완벽히 가려놓았다. 짙게 베인 비린내는 그만큼 진한 향수로 덮고서는 창문을 미세하게 열어두었다. 이것으로 급한 불은 꺼졌다.
한 손으로는 서류를 정리하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세하게 가슴의 박동을 조절했다. 문득 서류를 스치는 핏물 든 가죽장갑을 보고는 벗어 쓰레기통에 던지듯 버리고, 새 장갑을 꺼내던 순간이였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눈에 띄었다. 호기심과 경계가 섞인, 완전히 예상하지 못한 시선.
나는 그 시선을 즉시 계산했다. 문틈 너머로 그녀가 서 있는 위치, 몸의 긴장, 손의 떨림까지.
계획에 없던 변수였다.
그럼에도 나는 미세하게 미소를 떨며, 천천히 움직임을 이어갔다. 손끝으로 장갑을 점검하고, 시체가 숨겨진 방 안쪽을 한 번 더 훑었다. ‘봤나.’ 속으로 중얼거리며 심장을 조용히 눌렀다. 박동이 흔들리면 계산이 틀어지니까.
여자는 아직 도망치거나 소리 지르지 않았다. 단지, 문틈에 걸린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잠시 그 시선을 즐겼다. 마치 아주 얇은 얼음 위에 서 있는 듯한 긴장감, 위험하지만 매혹적이였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문 앞으로 다가가자마자, 곧바로 숨 죽여 발을 급히 옮기는 작고 가녀린 걸음걸이의 진동이 그대로 느껴졌다.
천천히 문을 열고, 발걸음이 진동한 곳으로 시선이 따라갔다. 복도 끝 코너를 돌아 사라지는 치맛자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그 뒤를, 아주 천천히. 상냥한 미소를 정리하며 따라나섰다.
검은 수트에 완벽하게 다려진 셔츠, 얇은 테 안경을 착용하고, 문 앞에서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잔잔한 긴장감을 풀어주는 듯, 호수 위 바람이 커튼을 흔들었다.
문이 열리자, 손님들의 시선이 나를 스쳤다. 나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맞추며, 손을 살짝 내밀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도 멋진 옷을 입으시고 오셨네요, 루미르씨.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미소는 자연스러웠다. 그 미소 하나가, 손님들의 긴장을 눈 녹듯 녹였다.
길을 안내하며 나는 손님들의 시선과 표정을 미세하게 살폈다. 한 남성은 다소 긴장한 듯 눈길을 돌렸다. 아제르 씨, 제가 부탁했던 자료는…? 나는 손 위에 올려두고있던 여러 서류들 중 남성의 완벽하게 정리된 서류를 꺼내 그의 손에 건넸다.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차와 함께 상세히 설명드리죠. 손끝으로 서류를 전달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의 체온과 긴장을 느꼈고, 내 계산표에 기록했다.
여성을 맞이할 때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손을 내밀며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시선을 맞춘 채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미소를 돌려주면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문을 열어주고, 발걸음을 맞추며 안내했다. 오늘 저녁, 호수 위 정원에서 차 한 잔 어떠실까요? 말 한마디에도 상대의 눈빛에는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약간의 특별함이 담겼다.
홀 안을 지나면서, 나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적절히 시선을 보내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손짓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가끔은 가벼운 농담을 섞어 긴장을 풀고, 분위기를 조율했다. 잔잔한 미소, 깔끔한 몸짓, 우아한 걸음걸이.
겉으로는 친절하고 센스 있는 남자이자 신사. 하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손님들의 욕망과 두려움, 작은 습관까지 장부 속 숫자로 기록되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든 친절과 호의는 연출된 장치였고, 미소 하나에도 계산이 담겨 있었다.
홀을 지나며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커튼 사이로 비치는 호수의 반짝임을 바라봤다. 그 평온 속에서도, 내 안의 계산은 멈추지 않는다. 언제나 이렇게 살아간다. 겉으로는 신사, 속으로는 완벽한 연산기계. 그리고 누구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방 안은 어둠과 향기의 농도 속에 잠겨 있었다. 촛불의 흔들리는 불빛이 벽과 커튼 사이를 타고, 둘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검은 장갑을 벗은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살짝 쓸어 올리고, 입술은 목선을 스치듯 다가갔다. 그녀의 숨결, 가슴의 떨림, 손끝의 미세한 떨림… 모든 것이 내 안에서 계산되었다. 다정한 연인으로서 속삭이며,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오늘 밤의 모든 움직임과 표정이 장부 속 숫자가 되어 기록되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에도 이 재벌의 옷가지를 무심한듯 유심히 눈에 담았다. 한청판 명품에 온갖 보석을 장식하고있었다.
그 돈다발을 내 손으로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잡고 내려갔다. 손 안에 들어오는 까슬거리는 감촉만이 내 흥미를 자극했다.
창밖의 호수 위 달빛은 잔잔하게 반짝였고, 방 안의 공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서로의 체온과 숨결을 나누며, 그녀의 시간의 경계마저 흐리게 만들었다. 그녀가 느끼는 온기와 안도, 심지어 희열까지도, 나의 재산이 될 것이였다.
서서히 밤이 깊어가고, 촛불이 서서히 짧아지며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때 손에 쥐어진 것은 가늘고 하얀 목덜미. 그 손에 힘을 주었다. 쾌락과 고통의 경계가 모호해질때 쯤, 몇 번의 반항을 가볍게 진정시키고는 그녀의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게 하였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그녀를 감싸 안았다. 모든 것이 정적 속에 잠겼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햇살이 벨벳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방 안을 부드럽게 밝히자, 밤의 농밀했던 그림자들은 서서히 사라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검은 장갑을 다시 끼고, 와인잔을 치우며, 지난 밤의 흔적을 단정히 정리했다. 그녀는 아직 눈을 감은 채, 내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얼음장같은 그녀의 머리칼을 한 번 더 스치지만, 그 얼굴에는 미소 하나 띄지 않았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