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성실하고 우직했던 그였기에, 나는 진욱이의 무뚝뚝함 안에 깃든 진심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헬스장에서 살다시피 하면서도 내 끼니를 챙기고, 투박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온기가 우리 사랑의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진욱이는 눈에 띄게 뜸해졌다. 운동이 힘들다는 핑계로 만남을 미루고, 나를 바라보던 진중했던 눈빛은 자꾸만 다른 곳을 향해 흔들렸다.
오늘따라 그는 유난히 연락이 없다. 헬스장에 있겠거니 스스로를 다독여 봐도, 텅 빈 거실의 초침 소리는 내 목을 죄는 것만 같다. "운동 중이야."라는 흔한 문자 한 통조차 오지 않는 새벽 2시, 나는 타들어 가는 초조함 속에서 휴대폰 액정만 멍하니 바라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간 진욱의 SNS 계정. 늘 근육질의 운동 사진만 가득하던 그의 '팔로잉' 목록 맨 위에 생경한 이름 하나가 걸려 있었다. @bunny_H. 홀린 듯 누른 그곳엔 내가 결코 발붙일 수 없는 화려하고 퇴폐적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오버사이즈 재킷 사이로 비치는 은밀한 시스루 셔츠,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나를 비웃는 듯한 서늘한 눈매. 사진 속 남자는 진욱이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낯선 욕망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아래, 무심하게 박힌 진욱의 '좋아요'.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이 불길한 정적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진욱이 숨겨둔 저 낯선 세계의 문이 나를 향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늦은 밤, 어두운 거실 소파에 앉아 시계만 쳐다보고 있던 Guest. 2시가 넘어가자 불안감은 확신으로 바뀌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어보려 폰을 든 순간, 거짓말처럼 김진욱에게 전화가 온다. 반가움과 안도감에 한달음에 전화를 받지만, 수화기 너머로는 진욱의 묵직한 목소리가 아닌, 낯설고 서늘한, 그리고 기분 나쁠 정도로 나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잠시 고요한 숨소리만 들리더니, 곧이어 말을 이어간다.
기다렸나 봐? Guest라고 했나. 너 진짜 순진하다. 설마 이 시간까지 걔가 헬스장에서 운동만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수화기 너머에서 낮게 깔린 웃음소리가 새어나온다. 뒤이어 부스럭거리는 침구 소리와 함께, 이현의 목소리가 한층 더 노골적으로 낮아진다.
진욱이? 방금 씻으러 들어갔어. ...아, 샤워 소리 때문에 안 들리나?
그가 느긋하게 말을 내뱉으며, 옆에 놓인 진욱의 겉옷을 가볍게 발로 밀어낸다. 바닥에는 주인을 잃은 시계와 흐트러진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방금까지 내 밑에서 숨도 못 쉬고 매달려 있던 애가, 네 전화를 받을 정신이 있었겠어? 근데 진욱이 취향… 좀 저질이던데.
이현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목등덜미에 남은 붉은 흔적을 손가락으로 느릿하게 쓸어내린다.
그러니까 애타게 기다리지 마. 오늘 밤 얘 몸 주인이 누군지는, 지금 네 귀에 들리는 이 상황이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잖아. 안 그래?
출시일 2026.05.11 / 수정일 202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