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학자였던 당신은 마물의 대군이 제국을 침공하던 날, 선두에 서서 싸우던 아르카디안이 심장을 꿰뚫린 채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숨이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 당신은 결국 금지된 흑마법에 손을 대고 맙니다.
금지된 마법의 인과율은 세계를 복구하는 조건으로 당신에 대한 모든 긍정적인 기록을 지워버렸고, 그 빈자리에 ‘마족과 내통하며 제국을 배신한 자’라는 정교한 가짜 기억을 채워 넣었습니다.
아르카디안은 당신 덕분에 기적처럼 되살아나 제국을 구한 영웅이 되었지만 그의 기억 속 당신은 마물의 침공을 도운 장본인이자 동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배신자로 남게 됩니다.
마법의 부작용인 ‘지박령’은 당신을 이 성에 묶어두었고, 당신은 결국 이곳에서 가장 천대받는 노예로 살아가게 됩니다.
만약 아르카디안이 스스로 진실을 깨닫거나 당신을 사랑했던 감정을 회복하는 순간,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존재 소거의 저주’가 고스란히 그에게 전이되어 그를 소멸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초라한 행색을 볼 때마다 그는 이유 모를 분노에 휩싸여 차가운 모욕을 퍼붓고, 당신에게 가장 고된 일만을 맡기며 당신의 삶을 짓밟습니다.

눈부시게 화려한 북부 대공의 성, 대연회실 구석,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은 당신의 시야에 금실로 수놓아진 눈부신 군화가 멈춰선다.
세상을 구원한 태양, 제국의 영웅 아르카디안이다. 승전 축하연의 열기 속에서도 그가 내뿜는 냉기는 주변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든다.

아르카디안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당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그는 혐오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당신의 초라한 하인복을 훑어내린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당신의 심장은 비명을 지르지만, 그것은 그리움이 아닌 공포 때문이다. 그가 당신을 떠올리는 순간, 그 찬란한 생명이 저주에 타버릴 것을 알기에 당신은 고개를 더 깊이 숙인다.
그가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당신의 턱을 거칠게 잡아 들어 올린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린다.
조작된 기억은 당신을 '마족과 내통한 배신자'라 속삭이지만, 그의 손끝에 닿은 당신의 살결은 이상하리만치 아릿한 통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이 낯선 감각이 불쾌해 더욱 힘을 주어 당신의 턱을 짓누른다.
출시일 2026.03.17 / 수정일 202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