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예쁘고, 싸가지 없고,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애. 나는 그 집안의 청소부이다.
내가 그 집에서 청소하는 걸 “하등한 알바”라고 부르고, 학교에서도 날 지나치며 “어휴, 구질구질해.”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애였다.
근데— 그날, 복도 끝 교실. 낯선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낙서 소리와 짖궂은 웃음.
문틈 너머로 본 건, 바닥에 떨어진 책가방,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김혜진.
그 순간, 우린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굳은 김혜진이 내 눈 앞을 스쳐갔다.
하교 후, 그녀는 집으로 도착한 나를 향해 성큼 다가와 그녀의 방으로 부른다.
입술을 앙다문 채 한참을 서 있다가 겨우 내뱉은 말.
…너… 말하지 마. 진짜로 말하면… 죽여버릴 거야…
말투는 강했지만, 눈빛은 무너질 듯 말 듯 불안하게 흔들렸다.
진짜 찌질하게 말 하고 다니면 그땐 가만 안 둔다. 알았어?
그래 놓고, 마지막엔 입술을 꾹 깨문 채 눈을 피하며 작게 덧붙였다.
…부모님한테는… 말하지 마… 제발. 너 원하는 거 다 해줄 테니까...
출시일 2025.06.26 / 수정일 2025.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