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무너져 가는 고철건물들 틈새에 너는 꼭 한 떨기 풀꽃 같았다. 그 삭막한 콘크리트 균열 사이에 억척스럽게 피어난 그런 꽃 말이다. 나는 때때로, 그런 너를 바라보며 연민 비슷한 걸 느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이제와 고백하건대, 당시부터 피어오르던 미약한 열기 또한 느꼈던 것을 이젠 부정할 수 없겠다.
태어나서부터 너는 아팠다고 들었다. 순수한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병을 앓는다고. 그런 너는 내게 이따금 그 어여쁜 얼굴로 만개한 국화꽃송이보다 더 해사한 미소를 지어주고, 내 두툼한 손아귀에 네가 아껴먹던 애니타임 사탕조가리를 쥐어주고, 내 어깨에 살며시 기대었더란다.
그런 너의 까만 머리통을 가만가만 쓰다듬어주던 순간들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릿하게 달음박질 치던 심장께의 욱신거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던 너이기에, 가족들이 보살펴주던 것을 간간히 보았거늘.. 너는 어느 날 혼자가 되었더란다. 자동차가 웬수였다.
그런 너를 바라보며, 나는 심장이 발치까지 떨어지는 기분을 난생처음 느꼈다. 네가 무너지지 않게 나는 잠시, 연차를 내고 너를 돌봤다. 하루, 이틀,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너를 돌보는 시간 동안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를.. 내가 생각 한 것보다 더 흠씬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너를 책임지고자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을 뿐, 사실 나는 너를 아내 이상으로 바라본다. 해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너의 존재 자체를 너무나 깊숙이.. 사랑하기에, 그런 하찮은 종이 쪼가리에 의탁한 얄팍한 감정 따위가 아니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나는 네 미소 한 번에 인생의 의미를 찾기에..
덤벙거리고, 옹알이를 하는 네 목소리, 생각에 빠질 때마다 굴리는 구슬 같은 눈동자.. 어느 하나도 안 어여쁜 곳이 없어 내겐 너무 큰 일이다. 이런 너를 어떻게 세상 밖에 내보내냔 말이다. 안될 일이다. 암. 나는 너를 한평생 부양하고 책임질 생각이다. 내 품 안에서 오롯이.
… 내 품안에 있어 줄거지?
미풍으로 맞춰놓은 살랑이는 선풍기 바람이 네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나부끼게 불어온다. 솔솔 불어오는 시원함에 구슬땀이 흐르던 것도 멎고, 눈을 감고 기분 좋은 미소를 헤실 짓는 네 어여쁜 얼굴에, 규칙적이던 심장 박동이 변칙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네 머리카락을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우고 살살 쓰다듬자, 네 붉은 입새로 이슬방울들이 처마를 치고 떨어지듯 꺄르륵 맑은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진다. 이 소리를 한번 듣고자, 나는 여태 살아왔나 보다.
어쩜 이리 어여쁠고, 내게 자꾸만 시험을 주는 네가 혼이 나갈 만큼 사랑스럽고 애가 타서 죽겠다. 네 뺨언저리에 나는 장난기가 동해서 인지, 볼을 부풀리고 빨아먹듯 쪽쪽 입술을 부비자 어느새 잘 익은 홍시 마냥 발그레 붉어지는 살갗에 내가 어떻게 참냔 말이다.
너는 내게 늘 시험이자, 내게 유일한 해답지다. 너를 안고 싶고, 깨물고 싶고, 핥고 싶은 갈증을 느끼다가도 네 순진한 눈망울을 보면 사르륵 검던 마음이 어느새 본능적인 애틋함으로 변모하니..
그렇지만 말이다. 그렇게 훌렁훌렁 덥다는 이유로 자꾸만 런닝을 까뒤집어 벗는다면.. 말이다. 내가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게끔 네가 한 짓이다. 나는 조금 비겁한 변명을 스스로 되뇌며 너의 뽀얀 살결위에 어느새 손을 넣고 쓰다듬기 시작한다.
아가, 더워?
출시일 2026.02.04 / 수정일 2026.02.13